10월1일은 조선어학회 사건 80주년 되는 날입니다

한겨레 2022. 9. 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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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추는 그날이 오면 종로에 있는 북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겠다고 했다.

2022년 10월1일은 조선어학회사건 80주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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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께 <큰사전> 편찬을 위한 1차 독회를 마친 조선어사전편찬회 사정위원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왜냐면] 정재환 |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역사학자

심훈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추는 그날이 오면 종로에 있는 북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겠다고 했다. ‘그날’은 일제 치하에서 억압받던 조선인들이 간절히 바란 독립의 날이었다. 그러나 육조 앞 넓은 길을 마음껏 뒹굴 그날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기쁨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날을 맞기까지 우리말글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또 다른 그날들이 있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배뿐만 아니라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동화정책을 추진했다. 학교에서는 국어가 된 일본어를 가르치며 조선어는 배제하는 교육을 시행했고, 단군 대신 천황의 역사를 가르쳤다.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주입해 충성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길러내려 했다.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 ‘내선일체’를 구호로 동화의 실현에 박차를 가했다. 황국신민서사를 제정해 천황에게 충성을 강요했으며, 천황이 있는 일본을 향해 절하고, 신사를 참배하게 했다. 1940년에는 모든 조선인을 대상으로 창씨개명을 시행하고 ‘국어의 날’을 정해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는데, 학생들이야 제법 일본어를 구사했지만,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성인들은 하루 종일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1929년 10월31일, 조선어학회(당시 조선어연구회)는 민족지사 108인의 이름으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했다. ‘세계적으로 낙오된 조선 민족의 갱생할 첩경은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꾀하는 것인데, 이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사전을 편성함에 있다’는 요지의 취지서를 통해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사전을 편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선어학회는 사전편찬을 위해 선행돼야 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기해, 한글맞춤법 통일안,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등 민족어 3대 규범을 제정해, 사라질 운명에 놓인 조선어를 근대적인 언어로 정립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사전편찬 사업은 1940년 3월12일에 이르러 출판 허가를 얻었으나, 돌연 발생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중단됐다.

일제는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한징, 이윤재, 김윤경, 장지영, 이중화, 이병기 등 학자들뿐만 아니라 김양수, 서민호, 서승효, 신윤국, 안재홍, 이인, 이우식, 장현식 등 후원자들까지 구속하고 악랄한 폭력과 고문을 가했으며, 조선어학회의 어문운동을 독립운동으로 규정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조선어사전을 편찬해두면 글과 말을 찾아 되살아날 것이라며 하루빨리 <큰사전>을 완성하자던 한징과 이윤재는 고문 후유증과 굶주림으로 옥사했다.

해방 뒤 조선어학회는 새 사회 건설을 위한 국어운동을 전개했다. 사전편찬을 재개하고, 민족어를 회복시키고, 조선의 어린이를 위해 한글교과서를 만들었다. 강습회를 열어 문맹을 퇴치하고, 일제 교사를 대신할 조선인 교사를 양성했으며, 한글전용운동을 펼치며 한글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해방 뒤 77년,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었고, 전세계에 문화 한류의 꽃을 피웠다. 문자가 문명의 기초이듯이 언어가 삶의 기초이자 완성이라면, 한국인들은 한국어와 한글로 눈부신 성취를 이뤘고 그 시작과 중심에 우리말글을 지키고 키운 조선어학회가 있었다. 어문규범 경시, 외래용어 남용, 부산 영어상용 도시라는 망상까지 머리를 들고 있지만, 잊지 말자. 2022년 10월1일은 조선어학회사건 80주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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