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기지개 켜는 면세점에도 정규직 채용이 필요합니다

한겨레 2022. 9. 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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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이번 팬데믹으로 많은 직원이 해고됐는데 그중에서도 열악한 판촉사원과 도급사원부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결성된 판촉사원이나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무급휴직을 하면서 버텼지만, 입점업체 직원 대부분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2020년 10월 면세점 매장 직원들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금주 | 롯데면세점 직원

안녕하세요?

저는 1989년 4월24일 롯데면세점에 입사해 지금까지 33년째 일하고 있는 판매서비스 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면세점 지회장이기도 하고요.

제가 입사한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돼 해외에서 국내로 오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해외로 출국하면서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이를 계기로 면세 사업이 번창해갔습니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입사 뒤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이전까지는 중국 고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제가 입사할 당시 면세점 이용 고객은 일본인들이 97~98%를 차지했고 이들을 상대로 일본어로 서비스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나는 노동자구나’를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롯데호텔 파업이었습니다.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던 2000년, 롯데호텔 노동조합은 6월9일부터 74일간 파업을 벌였습니다. 주된 이유는 외환위기 당시 면세점이나 호텔은 요즘처럼 환율 특수를 누리면서 많은 이익을 남겼는데, 회사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직원 개개인을 불러 상여금 50% 반납 사인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후배 사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면세점도 호텔의 한 부서였고 저도 조합원이었기에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당시 여러 일을 보고 배우고 겪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지금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파업 결과, 이후 롯데면세점에 입사하는 직원들은 계약직으로 입사해 3년이 지나면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전향적인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7년 뒤인 2007년에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롯데면세점에서 정규직 판매서비스 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된 자랑스러운 투쟁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경쟁사인 신라면세점에서는 매장에 근무하는 직영사원이 사라진 지 오래고, 최근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현대, 신세계 등도 직영사원은 거의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면세점들은 대부분 입점업체 직원들로 운영되고 있는데, 1994년께 서울 명동 본점 루이뷔통 매장에 업체 직원을 대거 투입하면서 판촉사원이라고 불리는 입점업체 직원들이 일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돌이켜보면, 대기업에서 책임져야 할 고용을 입점업체에 맡겨버리는 면세점 하청 구조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지만, 당시는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팬데믹으로 많은 직원이 해고됐는데 그중에서도 열악한 판촉사원과 도급사원부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결성된 판촉사원이나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무급휴직을 하면서 버텼지만, 입점업체 직원 대부분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한 업체 직원은 회사로부터 ‘매출 감소로 불가피하게 인원 조정이 필요하다. 3개월치 임금을 줄 테니 우선 모두 사직서를 써라. 대상은 누가 될지 모른다. 사직서를 쓰지 않으면 3개월치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썼다고 전해줬습니다. 그렇게 누가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사직서를 썼는데,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매니저급이었습니다. 그 결과 시내 면세점의 경우 직원이 한명도 없는 매장까지 생겼고, 평상시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쳐뒀다가 고객이 요청하면 해당 상품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주변에 근무하던 롯데면세점 직영사원이 달려가 응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애초에 직영사원이 근무해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지난 수십년 동안 판촉사원으로 운영하면서 대기업 면세점들은 인건비를 대폭 절감했습니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납품업자 등으로부터 종업원이나 그 밖에 납품업자 등에 고용된 인력을 파견받아 자기의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제12조 1)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아래 여러 예외조항도 두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야 이런 조항들을 잘 살펴서 불법 논란을 피해가고 있겠지만, 과연 그게 합당한 일일까요.

올해 10월부터 인천공항 1·2터미널 면세점 입찰이 예고돼 있습니다. 입찰제안서 내용 가운데 고용과 관련해서는 면세점 운영 주체인 대기업의 직영사원 채용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꼭 필요합니다. 면세점은 특허사업이기에 이런 기준을 내세우면, 응찰하는 기업들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면세점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대기업은 고용에 관한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게 될 것입니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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