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기자 응원하고 언론탓 대통령에 분노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노지민 기자 2022. 9. 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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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장본인인 윤 대통령 '진상규명' 외쳐…특정 매체·기자 공격 이어져
"대통령실, 혼란 기자들에게 뒤집어씌워" "윤대통령이 해결하면 될 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해외순방 당시 비속어를 쓴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 대신 언론의 보도가 문제라고 하면서, 특정 매체와 기자들에게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당시 순방기자단을 비롯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초기의 혼란을 기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언론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 글로벌펀드재정공약회의 당시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은 매번 바뀌었다. 미국 현지에서의 대응은 보도 자제 요청과 '사적 발언'이라는 선긋기였다. 한국 시간으로 22일 오전 8시 이후 대통령실 대외협력실 관계자가 해당 영상을 보고는 '어떻게 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고, 오후 1시10분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사적 발언에 대해서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건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10시46분께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XX들'는 미국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이고,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라는 해명을 한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26일엔 윤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XX들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겠다'고 하더니, 발언 여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홍보수석 해명대로라면 한국 국회를 향한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지자 기존에 인정했던 발언도 뒤집은 것이다.

▲ 9월22일 TV조선 보도 갈무리
▲ 9월22일 MBN 보도 갈무리

이번 순방기자단에 참여한 한 기자는 “대통령실이 초기의 혼란을 기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당시 일정은 예정에 없다 갑자기 추가됐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MBC·KTV 취재진이 이를 담당하게 됐다. 행사 직후 해당 취재진은 교통체증 문제로 이동 중인 차 안에서 국내 12개 방송사로 촬영본을 전송했다고 한다. 이후 대통령실 관계자가 직접 영상 확인을 요구해 사실상의 비보도 요청을 했고, 현장에 있었던 영상기자는 취재 제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밝혔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었던 취재기자들은 '바이든'에 대한 진위여부가 아닌, 보도를 통제하려는 대통령실의 대응이 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한 취재기자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48초만 대화했다는 걸 사실 믿을 수 없어서 영상을 끝까지 보다가 발언이 발견된 것”이라며 “(대통령실이) 왜 대화 뒤까지 찍었느냐, 찾아봤느냐는 것도 불편해하는 것이 처음에 심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문제 제기가 이뤄진 뒤에는 뭐라고 하지 못했다. 정당한 취재행위를 마뜩찮아 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전했다. 통상 대통령의 일정에 동행하는 취재진은 대통령의 발언 뿐 아니라 현장 인원과 구조물 배치,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옷차림과 동선·표정 등을 모두 담는다.

특정 매체를 공격하는 행태도 비판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진상규명을 요구한 뒤 여권은 MBC가 '조작방송'을 했다고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발언은 주요 매체들이 모두 비중을 두고 다뤘다. 한국 시간으로 22일 오전 9시39분 엠바고(보도유예)가 해제된 뒤, MBC 유튜브 채널의 영상 공개가 10시7분으로 가장 빠르긴 했지만 이후 여러 방송사들의 영상 게재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날 저녁 MBC, KBS, SBS 등 지상파 3사 뿐 아니라 TV조선, MBN, JTBC 등 종편들도 메인뉴스에 '바이든'을 명시한 자막을 썼다.

'MBC 조작보도로 대통령 발언이 잘못 전해졌다'는 여권 주장은 타 매체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한 방송사 보도국장은 “처음에는 영상 내용이 잘 안 들려서 내용 확인을 하고 음소거도 해본 뒤에 '바이든'이 맞다라고 판단을 해서 보도한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MBC가 빨리 보도를 한 거지, 누구 눈치 보면서 먼저 내는 걸 볼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주영진 SBS 앵커는 26일 방송에서 “왜 국민의힘이 MBC에 이렇게 맹공을 가하느냐”며 “SBS도 나름 확인을 거쳐서 보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27일 대통령실이 MBC에 보낸 공문 일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공개적인 비판에 나서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 영상기자단이 26일 출입기자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사용하는 단체 대화방에 “정당한 취재에 대한 왜곡을 멈추라”며 입장문을 내자 몇몇 기자들이 공개적으로 '응원한다'고 밝혔다. 27일 대통령실이 해당 대화방에 MBC에 보낸 질의서 내용을 공유하면서 “문화방송(MBC)의 설명이 진상 규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MBC 기자가 “문화방송이 회신한 내용을 공유해드린다”며 MBC 입장문을 보내자 한 매체 기자가 '힘내세요'라며 지지를 보냈다.

해당 대화방에서 한 기자는 “특정 방송이 왜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됐는지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명백한 귀책사유가 왜 해당 방송사와 언론으로 집결되는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통령실은) 브리핑·백브리핑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섣부른 보도로 13시간이라는 아까운 시간이 지나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의 낭비는 기존 보도가 아닌 순방 현지와 귀국 후 내놓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실언과 실책, 그리고 해명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한 영상기자는 “처음 홍보수석이 언론 보도가 '짜깁기와 왜곡'이라고 브리핑을 했을 때 항의를 했더니 언론 상대로 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후에는 했던 말까지 바꿔가며 언론을 문제 삼기에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의견이 모였다”면서 “이번 논란은 윤 대통령 한 명만 입을 열면 끝나는 일”이라 강조했다.

외신도 대통령실 대응 다뤄…온라인에선 'MBC기자 좌표찍기'

해외 언론도 윤 대통령이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는 보도를 전하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한국 대통령이 핫마이크(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한 발언)를 보도한 언론을 질책했다'(South Korea's president scolds media over hot mic moment) 제목의 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진상규명 요구와 여권의 대응, 이에 대한 야권의 비판 등을 전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CNN, 독일 DW(도이치벨레), 영국 로이터통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의 매체도 관련 내용을 다뤘다. 미셸 예 히 리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경우 트위터에 한겨레 영문 기사를 공유하면서 대통령실 영상기자단의 입장문을 인용했다.

▲9월26일 영국 로이터통신 보도 갈무리

한편 MBC를 겨냥한 여권의 비판이 기자 개인에 대한 '좌표찍기 비난'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공영방송 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MBC 소수노조(MBC노동조합)는 A기자 실명을 거론한 성명에서 그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고, 바이든 조롱 발언을 알렸다고 했다. A기자는 미디어오늘에 “해당 발언을 잘못 해독해 본사에 보고한 바 없다. 비속어로 여겨지는 단어를 영상에서 발견하고, 이를 당시 기자실에서 주변 기자들과 공유했다”며 “당시 기자단 사이에선 해당 발언이 어떤 말인지에 관련해, 자연스러운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해당 행사 취재 풀러는 타 매체 기자”라고 설명했다. SNS 등에서는 대통령 발언을 보도한 B기자가 광주출신의 좌파, 빨갱이 기자라는 주장과 해당 기자의 신상털이가 이뤄졌다. MBC는 28일 “허위사실유포는 범죄”라며 “기자 개인에 대한 사이버 테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가장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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