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중국 막말 논객이 '민주'와 '다양성'을 주장?

정영태 기자 2022. 9. 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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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진, 여론통제·영화검열·제로 코로나 정책 잇따라 비판


중국 환구시보의 전 편집인 후시진(胡锡进)은 '중국 공산당의 입'이란 별명으로 불려 온 인물입니다. 현재는 환구시보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중국 SNS인 웨이보의 팬이 2천4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여전히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후시진과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입장을 더 강경한 논조로 설파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외부에서는 극좌 매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늘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이 이길 수 있다"는 논조로 대미 강경발언을 이어왔고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군이 펠로시가 탄 비행기를 요격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내놨습니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디아오판(叼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주인이 던진 원반을 강아지가 물어 다시 주인에게 돌아온다는 뜻을 갖고 있어서, 언론이라기보다는 권력층의 선전 기관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후시진은 한국을 향해서도 여러 차례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사드 사태 때는 "한국 보수는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졌냐"라고 했고, 최근에도 나토와 가까워지는 한국을 두고는 "한국도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막말 논객' 후시진의 요 며칠 새 발언이 중국 정부 정책을 사실상 비판하는 논조를 보여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공식화할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불과 20여 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나온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여론 통제 안 돼…비판 수용은 사회의 민주 실현 방식이다"


후시진은 지난 27일 웨이보를 통해, 한 중국 정부 관료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관료는 '자신의 상사'가 인터넷 여론을 특히 신경 쓴다며 혹시 부정적인 댓글이 올라오면 꼭 삭제하려 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후시진은 '일부 정부 관료들이 통제에 익숙해져, 통제되지 않는 여론의 불확실성을 너무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 '여론을 과도하게 통제해서는 안 된다'면서 '만약 모두가 만족하고 정부를 100% 지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가짜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판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포용성이, 사회의 민주를 실현하는 방식의 하나'라고까지 옹호했습니다. 후시진의 이 글은 한 관료와 그의 '상사'를 예로 들어 말하긴 했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여론 통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댓글을 공공연히 삭제하는 중국의 인터넷 정책에 대해서도 '민주 실현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한 셈입니다. 그동안은 앞장서 '애국주의' 잣대를 들이대며,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공격해 온 후시진과 환구시보의 행적과 비교해 보면 매우 이례적입니다.

"문화에 급진적 정치 잣대 적용하면 결과 안 좋아"


앞의 글을 올린 지난 27일 후시진은 문화산업에 대해 '급진적 정치 잣대'를 적용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급진적인 '정치적 올바름' 주장이 너무 강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후시진이 언급한 것은 중국어로 정치정확(政治正确) 혹은 정치부정확(政治不正确)인데, 정치적 올바름 또는 정치적 기준이나 잣대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영화나 문화 상품에 대해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지적이 등장하면 해당 정부 부서가 나서서 퇴출시키거나 대중에 공개되기 전에도 사라져 버린다는 겁니다. 후시진은 체제의 우수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는 이른바 주선율(主旋律) 영화가 있다면, '다양하고 개방적인 문화 시장 공간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개방적 공간이 위축되면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간다'면서 문화적 다양성과 생동감을 강조했습니다. 후시진의 이 글에는 4천 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습니다. 특히 최근 중국 영화 '먼지 속으로 돌아가다(Return to dust)'가 영화시장에서 퇴출된 일을 언급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중국 농촌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사회 부조리 고발을 담은 이 영화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갑자기 영화관과 동영상 플랫폼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문화적으로 미국보다 더 개방적이어야만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댓글도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 게 바로 당신 아니냐'며 후시진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를 지적하는 댓글도 꽤 많습니다.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인내심 잃고 있다…전문가들 침묵하고 있어"


후시진은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잇따라 올렸습니다. '중국은 방역의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고, 많은 사람이 반복되는 '정태적 관리'(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점점 인내심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방역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줄어들고 많은 전문가들이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국가가 관련 연구를 종합해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달리 말해 현재 중국의 방역정책은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고, 국가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특히 방역정책에 대한 논의를 '과학적 합리성의 궤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현재 방역정책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비판입니다. 방역정책과 관련된 글들에는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전문가들이 감히 말하지 않는 건,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서'라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입장 바꾼 극좌 포퓰리스트?>


앞서 언급한 후시진의 최근 글들을 보면, 막말 논객이 아니라 체제 비판적인 인사가 쓴 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댓글 중에서도 그동안의 행적과 어울리지 않는 변화에 의문을 품는 글들이 꽤 많습니다. '극좌 포퓰리스트가 입장을 바꿨다' 같은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후시진의 정확한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공산당 당 대회라는 중요 정치 이벤트를 앞둔 시기여서 해석이 분분합니다.'당 대회 이후 달라질 정책 방향을 미리 읽은 것 아니냐'는 해석부터 '자신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후시진처럼 '정치적 후각'이 발달한 사람이 이런 글을 쓴 배경에는 반드시 어떤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진=웨이보)

정영태 기자jyt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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