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 팔린다면서도 우윳값 올리겠다는 호소

이민아 기자 입력 2022. 9. 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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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원유(原乳·우유의 원재료) 가격이 리터당 47~58원 사이에서 인상될 예정이다. 낙농진흥회는 지난 20일부터 원유가격조정협상위원회를 열고 원유 가격 단가 조정 협의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딱 두차례 만났지만, 여기에 참가하는 유업체들은 벌써부터 원유 가격이 오른다면 흰우유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며 군불을 지피고 있다. 더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서 우유를 만들어야 하니, 가격을 올리는 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원유 가격의 8~10배 정도인 500원 안팎으로 우유 가격도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업체의 주장은 세가지 측면에서 모순적이다. 우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 유업체들이 우유 가격(1리터 기준)을 평균 2700원에서 3000원대로 올리려는 이유 중 하나는 “흰 우유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품 소비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기업은 본 적이 없다.

소비가 줄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제품을 팔거나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다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노력하는 것이 대부분 기업이 선택하는 경영 방향이다. 하지만 유업체는 안 팔리는 제품을 두고 가격을 올리겠다며 반대로 가고 있다.

두번째로 이들이 주장하는 만큼 우유업황이 힘들지 않다. 유업체는 흰 우유만 팔아서 돈 버는 회사들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해마다 유제품 소비를 늘리고 있어, 전체적인 업황이 어둡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원유량은 10년 전인 2012년(335만9000t)보다 32.4% 늘어난 444만8000톤(t)이었다. 유업체는 기호 식품인 치즈, 버터, 요거트 등 유가공품과 분유, 커피를 팔고 해외 유제품을 수입해서 수익을 낸다.

이들은 자회사를 통해 카페 프랜차이즈를 내는 사업으로도 수익을 내고 있다. 흰우유 판매로 발생하고 있는 손실을 사업 다각화를 통해 메우고 있다.

세번째로 우유는 ‘공공성’이 있다. 이들은 올해만 해도 국산우유 지원 예산으로 838억원을 받아 국산 원유를 구입하는 데에 드는 적자를 정부로부터 보전받았다.

유업체는 올해 뿐 아니라 매년 비싼 국산 원유를 사는 것으로 발생하는 적자를 메워주는 용도의 예산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업체가 온전히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그간 봐온 기업의 생리는 원가가 오르면 가격을 올리고, 원가가 떨어지면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번 올라간 공산품 가격은 좀처럼 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영 환경이 어려울 땐 재빠르게 가격을 올려 소비자와 부담을 나눠지고, ‘먹고 살만해졌다’ 싶으면 오너의 봉급과 배당을 먼저 늘린다면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업체가 가격 인상에 신중을 기하기를 기대한다. 지난해엔 원유 가격이 1리터당 21원 올랐을 때 우유 가격은 140~200원 정도 올랐다. 원유 가격 인상은 유업체에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쓰이고 있다. 제조 경비, 물류비, 포장재, 원부자재 인상폭을 원유 가격 인상 시점에 맞춰 한번에 반영해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원유 가격이 우유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리터당 1100원이고, 현재 흰우유 가격(2700원)의 40~41% 비중에 불과하다”고 했다. 원유 가격 인상을 핑계로 과도하게 우윳값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미리 경계한 것이다.

원유 가격 인상에 편승해 우유 가격을 과도하게 올린다면 유업체는 한국 시장에서 외면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값싼 수입산 우유가 한국 시장에 들어온다. 4년 후에도 한국 유업계가 생존하려면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소비자들에게만 전가하지 말고, 함께 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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