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일손 이탈 막아라, 농촌마다 안간힘

이해인 기자 입력 2022. 9. 28. 03:32 수정 2022. 9. 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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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공무원 파견받아 근로 관리 맡기거나 고향 가족 재산 압류
고창군서만 올해 들어온 계절 근로자 60% 잠적

전북 고창군에서 20년째 10만㎡(약 3만평) 규모로 수박, 멜론, 고추 농사를 짓는 김모(61)씨는 요즘 매일같이 인력 사무소를 돌며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 지난 4~5월 네팔에서 들어온 계절 근로자 10명이 지난달 6~7일 이틀에 걸쳐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오이고추는 따는 시기를 놓치면 10㎏당 4000원 받을 걸 2500~3000원밖에 못 받아 피해가 심하다”고 했다.

전북 임실군이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하반기에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추진한다. 하반기 계절근로자는 토마토, 딸기 등 임실지역 시설원예 농가의 시름을 덜어줄 전망이다. 2022.9.13/임실군

계절 근로자는 농번기 등 인력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시기에 일손을 채울 수 있도록 외국인을 단기간 고용할 수 있게 비자를 내주는 제도다. 지자체 요청을 받은 법무부가 최장 5개월까지 국내에서 일하게 허가한다. 하지만 김씨의 농장처럼 이 제도를 악용해 계절 근로자로 입국한 후 자취를 감추고, 비자가 만료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국내에서 일을 계속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껏 데려온 인력이 중도에 빠져나가자 지자체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해외 도시와 협약을 맺어 한국에 온 계절 근로자가 종적을 감춘 경우, 해외에 있는 이 사람의 가족이나 지인의 재산을 압류하거나 향후 본국에서 이 사람의 출국을 제한한다.

전북 고창군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윤병렬(69)씨도 수확이 한창이던 이달 초 계절 근로자 3명이 하룻밤 새 사라지는 일을 당했다. 윤씨는 “첫서리가 내리기 전인 다음 달 말까지 고구마를 전부 수확해야 하는데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가족까지 동원해 고구마를 캐고 있다”고 말했다. 고창군에서만 올해 들어온 계절 근로자 253명 중 60%에 달하는 150명이 잠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도 비슷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9년엔 3497명이 입국해 이 중 57명이 종적을 감추는 데 그쳤지만, 작년에는 입국자 559명 중 316명이, 올해는 입국자 7041명 중 8월까지 635명이 이탈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의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불법 체류를 문제 삼지 않고 임금도 많이 주는 곳이 여럿 있다”는 얘기가 퍼져 있다고 한다. 충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계절 근로자는 최저 시급을 받게 돼 있어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매달 월급은 200만원 정도인데 구인난으로 이보다 더 돈을 주겠다는 곳이 많아 공장 등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농가 등이 많은 지자체는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계절 근로자를 붙잡아 둘 묘안을 짜내고 있다. 고창군은 내년부터는 지역 내 결혼 이민자의 가족이나 친척을 계절 근로자로 함께 초청하기로 했다. 고창군 관계자는 “아무래도 가족이 함께 지내면 이탈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경북 성주군은 아예 현지 가족에게 연대 책임을 묻는 방식의 양해각서(MOU)를 이달 초 필리핀 아팔릿, 마갈랑, 루바오시와 체결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계절 근로자는 필리핀 현지 가족이나 친척 3~5명의 재산 합계 5만달러를 증빙해야 하고, 이 근로자가 무단 이탈하면 이 재산이 압류되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성주군 관계자는 “올해 124명 중 절반에 달하는 47명이 이탈해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충남 부여군도 작년 말 필리핀 코르도바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무단 이탈 전력이 있는 계절 근로자는 필리핀 측이 일정 기간 다른 나라로 출국하지 못하게 제한하기로 했다. 강원도 양구군은 아예 올해부터 필리핀 타를라크주(州)의 공무원을 국내에 파견받기 시작했다. 양구군 관계자는 “파견 기간 필리핀 타를라크주 공무원이 세 차례 방문해 1주일씩 머물면서 계절 근로자들과 면담을 하는 등 관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법무부도 지난 8일 계절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체류 기간을 최대 5개월에서 10개월로 연장하는 방안과 새 관리 시스템 구축 계획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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