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차라리 죽여달라"..'규제 개선' 호소한 핀테크업계 [긱스]

빈난새 2022. 9.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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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핀테크 스타트업과 간담회
네·카·토 빼고 중소 핀테크 16곳 초청
"스타트업에 오롯한 관심 반가워"
'신발 속 모래알' 규제와 투자 위축에
핀테크 업계 "생존에 위협 느낄 지경..
샌드박스 활성화, 규제개선 속도 내달라"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가운데)이 27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 박병원홀에서 '초기•중소형 핀테크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이런 자리를 정말 기다렸습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와 기존 금융사 사이에 낀 작은 핀테크들은 그동안 금융당국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도 여의치 않았는데……."

27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 은행권 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운영하는 복합 스타트업 공간인 이곳에 핀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 16명이 모였다. 소위 네·카·토(네이버·카카오·토스)는 없었다. 깃플, 뉴지스탁, 더치트,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뱅크샐러드, 보맵, 에이락, 에프엔에스벨류, 줌인터넷, 페이민트, 페이스피에이팍, 페이콕, 페이플, 핀다, 피플펀드, 해빗팩토리 등 중소형 핀테크 기업이 주인공이었다. 

이들을 초청한 것은 금융위원회다. 이례적으로 금융위 1급 상임위원인 권대영 위원이 주재한 이날 간담회는 이름부터 '초기·중소형 핀테크 스타트업 간담회'로 붙었다. 그동안 빅테크와 금융사간 '기울어진 운동장' 논의에 가려졌던 중소 핀테크의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다. 금융위가 빅테크나 기존 금융사 없이 핀테크 스타트업만 따로 모아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올해 첫 '핀테크 간담회'에 업계 반색

권 위원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저물며 이제 '핀테크 빙하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투자부터 해외 진출, 규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규제혁신·지원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이어 "규제란 게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알 한 톨"이라며 "그런 규제들을 속도감 있게 개선하는 게 핵심인데, 쉽진 않겠지만 서로 의견을 모아서 연말 안에 좋은 방안을 함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금융 규제 샌드박스, 오픈뱅킹, 금융 마이데이터 등 굵직한 핀테크 정책을 관철시켜 온 권 위원의 발언에 스타트업들은 반색했다. 

금융위는 "일회성 만남이 아니다"라며 이날 1차 간담회를 시작으로 다음달 2차 간담회, 연말께 정책간담회까지 쭉 개최하겠다는 계획까지 공개했다. 현장 의견에 대한 답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이다. 이날 회의에는 금융위 전자금융과 금융혁신과 금융데이터정책과 금융규제샌드박스팀 등 관련 부서 실무자들도 총출동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가운데)이 27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 박병원홀에서 '초기•중소형 핀테크 간담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핀테크 업계의 반응은 뜨겁다. A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간담회가 많았지만 그 이후에는 금융당국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없었다. 또 한동안은 빅테크와 대형 은행간 '기울어진 운동장'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위주로 논의가 흘러가면서 중소 핀테크에 대한 관심은 많이 약해졌던 게 사실"이라며 "한때는 '아직도 핀테크를 육성해야 하느냐'는 분위기도 느껴졌는데, 이번 간담회를 시작으로 자주 만나고 의견을 듣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만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작년 12월에도 금융위가 '빅테크와 중소형 핀테크는 서로 다르게 보고 차등 규제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긴 했지만 구체적인 액션은 없었다"며 "업계 입장에선 이번처럼 현장 회의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변화하고 있는 경제 금융 환경이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초기·중소형 스타트업들에 지원을 집중할 것"이라며 "거기서야말로 제대로 된 혁신이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더 관심을 두고 지원 방법을 고민하려 한다"고 했다. 

 "규제 개선 없으면 사업 접어야"

올 들어 금리가 급등하고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직격탄을 맞은 핀테크 업계 입장에선 금융당국의 관심이 기껍다. 핀테크 업계는 지난 2년간 저금리와 벤처투자 호황을 타고 유례 없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상승세가 꺾이는 속도도 급격하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큰 핀테크 기업도 채용을 중단하거나 투자 유치가 안 돼 작은 비용까지 졸라매고 있다는 소문이 매섭게 돈다.

더 큰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규제다. 지난해 금융소비자보호법 확대 시행 이후 쪼그라든 핀테크의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도입 4년째를 바라보는 금융 규제 샌드박스는 적잖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느린 절차와 불투명한 운영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핀테크 기업들이 기대를 걸었던 전자금융거래법 전면 개정 작업도 2년째 공회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핀테크 기업 대표는 "현행 법규제는 업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이대로라면 차라리 (사업을 접고) 죽여달라는 심정"이라고 했다.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가장 컸던 것은 금융 규제 샌드박스다. 스타트업이 촘촘한 법 규정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규제 유예를 받아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시범 운영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9년 시작된 규제 샌드박스로 소액 해외 송금, 온라인 대출 비교 플랫폼, 소수점 주식 거래 등 200개 넘는 혁신금융서비스가 도입됐다. 

규제 샌드박스로 사업화와 투자 유치, 해외 진출에까지 성공한 사례도 있다. 신용카드 단말기 없이 스마트폰으로만 결제가 가능한 솔루션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페이콕의 권해원 대표는 “샌드박스 기간이 끝나기 전에 관련 규제가 실제로 해소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서비스 도입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페이콕의 사례처럼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고 관련 규제가 실제로 개선돼 법제화까지 이어진 경우는 극히 적다. 200여 건의 혁신금융서비스 가운데 실제 규제 개선이 완료된 서비스는 11개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더라도 근거 규제가 실제로 풀리지 않으면 몇 년이고 '시범 운영' 족쇄를 벗지 못한다. 권 대표는 "법제화가 되기 전에는 관망하던 해외 투자자들이 실제 규제 개선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계약을 하더라"며 "반대로 말하면 서비스 제도화가 안 됐더라면 사업화와 해외 진출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부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해도 1년 넘게 회신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호소해왔다. 소상공인 대상 비대면 간편결제·수납을 지원하는 '결제선생' 운영사 페이민트의 김영환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한 지 3년이 넘어가면서 활기와 동력을 많이 상실한 게 사실"이라며 "사전 수요조사 절차 같은 허들을 없애고 더 많은 사람이 도전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입장에선 서비스 혁신성과 심사 문턱 낮추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제까지 업력이 쌓인 곳 위주로 샌드박스 허가가 나는 사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어서 중소 핀테크 업체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비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금융위는 다음달 중 개최할 2차 간담회를 통해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투자 유치와 운영·사업자금 관련 애로사항을 청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한 스타트업 대표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가치가 조정되고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높아 정책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가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모태펀드의 규모가 올해 급감한 데 대한 우려가 높다.

권대영 위원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규제 개선이 절실하다는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숙연해졌다"며 "규제와 투자, 해외 진출 등 모든 측면에서 정부 지원이 속도감 있게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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