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수퍼컴도 바보 만든다.."목 내걸고 예보" 애타는 기상청

장윤서 2022. 9. 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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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뉴노멀] <중> 엉클어진 기후 시스템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예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 기상청

“태풍 난마돌은 오늘 아침 9시에 북위 39.8도 동경 142.6도에서 온저화(온대저기압화)되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기상센터. 태풍이 소멸했다는 취지의 국가태풍센터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환호 대신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현재 태풍의 중심기압이 얼마죠?”, “온저화 된 후에도 저기압성 강도가 강해질 수 있지 않나요?” 등의 내용이었다. 기후 전문가인 예보관들이 참석한 기상청의 예보회의는 최근 들어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고 한다.

기상청 예보회의. 사진 기상청

기자가 참관한 예보회의는 이날 세번째로 열린 회의였다. 앞서 오전 7시 50분, 10시에도 회의가 열렸다. 정관영 기상청 예보국장의 마이크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대형 스크린에 국가태풍센터(제주), 국가기상위성센터(진천), 수치모델링센터(대전), 기상레이더센터(서울)의 모습이 차례로 떴다. 회의에 참석한 10여 명의 예보관들은 한반도 남쪽 해상에서 새로 등장한 소용돌이 소식에 마른 침을 삼켰다. 브리핑 화면과 각자 준비한 자료를 비교하느라 8대의 모니터가 쉴 새 없이 깜빡였다.

50여분간의 회의를 마친 한 예보관은 “태풍이 올 때는 거의 싸울 듯이 회의를 한다. 예보회의에서만큼은 공무원 계급장을 떼고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날씨가 화창했는데도 기상청 예보관들의 업무 긴장도는 높아 보였다. 이상 기후가 상식이 된 시대에 기상청은 24시간 비상이다. 국가기상센터에선 이런 예보회의가 하루에 많게는 20번 이상 열린다고 한다. 15년 차인 한 예보관은 “예전보다 회의 참석자도 다양해졌고 회의 시간도 30~40분에서 1시간 이상으로 길어졌다. 오후 3~4시에 하던 오후 예보 회의를 2시로 앞당겨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험보다 더 많이 예보했는데도…”…기상청도 놀란 폭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을 중심으로 시간당 최고 141.5㎜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월 8일, 기상청도 내부적으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수치예보모델의 예측치보다 훨씬 많은 시간당 100㎜를 예보했는데 그보다도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김성묵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장은 “경험에서 벗어난 양을 예보했는데도 이걸 넘어선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임윤진 기상청 수치모델활용팀장은 “총가강수량 70~80㎜를 최대치라고 생각했다. 모델상에서 일대에 있는 수증기량을 다 뽑아낸 것보다 더 많은 강수량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제12호 태풍 무이파도 모델과 다른 경로로 움직였다. 노르웨이 기상청이 사용한다고 알려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모델도 태풍이 상륙하기 1주일 전까지 경로를 크게 벗어나게 예측했다. 예보관들은 주변 기압계의 상황을 분석해 모델과 다른 실제 경로에 가까운 예보를 했다. 제14호 태풍 난마돌 땐 모델이 250㎜의 강수량을 보였지만 예보관들은 최종 150㎜로 예상 강수량을 내놨다. 19일 난마돌이 한반도에 쏟아낸 비의 양은 약 120㎜였다. 한 예보관은 “강수량을 예보한 후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기상청 사람들은 최근 들어 “목을 내놓을 각오로 예보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모델이 얘기하는 시나리오와 다른 판단들을 올해 더 많이 하고 있어서다.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엇갈려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계속 거친다”고 했다. 김성묵 팀장은 “(예보회의) 데스크에 앉아서 빨간 불 켜고 말을 한다는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위험 기상은 목을 내놓고 책임질 각오를 하고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태풍이 세 번 지나갈 때마다 ‘제발 인명 피해가 없기를…’이라며 빌고 또 빈다”고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수백억 슈퍼컴퓨터도 예측 힘들어


기후 변화는 한국형 기후의 특성을 바꿔놓고 있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최근 “장마를 대신해 여름철 비의 형태를 대체할 표현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상청은 다음 달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장마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논의를 시작한다.

예보관들은 북반구를 둘러싼 파동의 흐름이 폭염과 폭우를 번갈아 불러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유 청장은 8월 서울 집중호우에 대해 “기상청이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와 유럽중기예보센터의 모델도 8일 서울에 70~80㎜ 수준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며 “어떤 모델이나 선진국의 최고 전문가가 와도 이 이상의 비가 내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봤을 것” 라고 말했다. 기존의 자료와 경험칙만으로는 이상 기후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처럼 불규칙하게 이동하는 기압계에는 수백억대의 슈퍼컴퓨터도 역부족이라고 한다. 현대 기상 예보의 핵심은 수치예보다. 수치예보는 대기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는 역학 및 물리 방정식을 슈퍼컴퓨터로 계산해 미래의 대기상태를 예측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수치예보모델이다. 초기 관측값을 넣은 수치예보모델의 계산을 바탕으로 예보관들이 분석을 내놓는다.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수치예보모델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1~2019년 9년간 789억원을 들여 우리나라 자체 모델인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을 도입했다. 한국 모델은 지난 2020년 4월 28일부터 영국 모델(UM)과 병행해 운영 중이다. 미국‧유럽연합‧영국 등에 이어 세계에서 9번째로 개발된 한국 모델의 예보 정확도는 세계 6~7위 수준이라고 한다.

기상청은 지난 5월부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해 3km 간격으로 날씨예측 정보를 생산하는 한국형 지역수치예보모델을 도입했다. 기존 모델은 전 지구 영역에 대해 12㎞ 간격으로 예보 정보를 만드는데, 국지적인 집중호우 등이 자주 발생하면서 보다 고해상도 모델이 필요해지면서다. 모델에서는 대기가 격자무늬로 나뉘는데, 이 간격이 촘촘해질수록 해상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12㎞ 해상도인 모델은 제주도 육지를 12개로 나눠 보는데, 3㎞ 해상도 모델은 206개로 나눠 보는 식이다. 기상청은 2026년까지 해상도를 1㎞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총 1023억원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측-모델-예보 3박자 맞아야


충북 청주시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 설치된 슈퍼컴퓨터 5호기. 뉴스1
모델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특히 위험에 취약한 바다·산·극지방 등의 관측 자료가 필요하다. 현재 수치예보모델에 들어가는 관측값의 약 90%는 위성 관측값이다. 기상청은 2031년까지 채널의 개수를 기존 16개에서 18개로 늘린 천리안위성 5호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예보관의 판단도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기상청은 위험기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재해기상대응팀을 운영하고 학계와 협업해 인공지능 기법을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여러 모델 간 비교를 통해 확률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앙상블 예측’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맞춰 예보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인선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예측의 범위를 넓히려면 확률적인 통계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하나의 모델을 조건을 달리해서 여러 번 돌리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했다. 또 “기존 모델을 검증할 때 과거 자료를 기준으로 하는데, 최근 관측을 중심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결국 판단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보관들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충분한 분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천권필·편광현·장윤서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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