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시법 개정해 과도한 욕설·소음 제한을

입력 2022. 9. 28. 00:27 수정 2022. 9. 2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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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과거 독재정권에서 집회·시위는 대부분 반정부 성격을 갖고 있었다. 화염병과 돌이 날아다니더라도 이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권 행사로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집회·시위는 정부에 대한 저항 수단이 아니며 평화적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서만 정당성을 갖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의미와 기능도 이제는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남용으로 타인의 기본권이나 중대한 공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독재정권을 상대로 저항권을 행사하는 방식의 폭력적 집회·시위는 민주정부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 민주화 뒤 집회·시위 성격 달라져
타인의 기본권과 공익 침해 안 돼
소음은 장소보다 방식 규제 필요

시론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나면서 집시법의 개정 요구도 많았고 실제 개정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여야의 집시법 개정안이 11개나 발의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계기는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및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의 격렬한 시위였다.

집회 장소를 제한하는 것은 기존 집시법에도 있고, 외국에도 유사한 입법 사례가 많다. 그런데 집시법 개정이 문제 되는 것은 과거 청와대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이 윤 정부 들어 독립된 공관이 됐기 때문이다. 집시법 개정을 통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집회 제한 장소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집회 제한 장소는 중요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며, 전직 대통령 사저는 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가 무제한 허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전직 대통령 시저뿐만 아니라 집회·시위에서 과도한 욕설·소음 등이 다른 국민의 주거 평온을 해치는 경우도 똑같이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회 장소의 제한이 아니라 집회 방식을 제한하는 차원에서 소음·욕설 등의 규제를 실질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법상으로도 소음·욕설의 제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집시법 제8조 5항 1호와 제14조, 같은 법 시행령 제4조, 제14조와 별표2에 따라 제한할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 다만 제한을 위반하더라도 실효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소음 제한은 규제 방식이 1시간에 3회 이상 최고소음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제한하게 돼 있기 때문에 소음규제의 실효성이 매우 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나아가 집회·시위에서 욕설 등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자는 개정안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에 의해 처벌이 가능한 것을 집시법에 특별 규정을 두어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시법 개정의 올바른 방향은 집회·시위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집시법 개정의 올바른 방향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다른 국민의 기본권 및 중요한 공익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오남용되는 것도 막아야 하겠지만,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장 합리적으로 보장하면서 다른 기본권과 공익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집회·시위를 통한 폭력적인 행동이나 발언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의사 ‘표현’의 자유이지, 물리력을 동원한 의사 ‘관철’의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화 직후에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집회·시위의 역할을 인정해 집회·시위로 인한 다른 기본권의 침해를 폭넓게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소음 규제 등과 관련한 집회·시위의 자유와 다른 기본권 사이의 합리적인 균형점은 서구의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일반 국민이 참고 견딜 수 있는 한도에 맞춰 재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집회·시위 문화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기다려서 집시법을 개정하기보다는 집시법 개정을 통해 집회·시위 문화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집시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되길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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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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