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안건조정위원회
우리 국회법에는 다수당의 입법 폭주에 제동을 거는 조항이 있다. 대표적인 게 안건조정위원회다. 상임위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6명의 조정위원이 최장 90일간 법안을 숙의한다. 핵심은 “다수당에 속한 조정위원의 수와 다수당에 속하지 않은 조정위원 수를 같게 한다”는 조항이다. 토론을 거쳐 가능하면 합의안을 만들어보라는 취지다.
그러나 쟁점법안 심사 때마다 안건조정위는 무용지물이 됐다. 매번 다수당과 뜻을 함께하는 무소속 또는 위성정당 국회의원이 소수당 몫 조정위원 자리를 차지해서다. 6명의 조정위원 가운데 3명을 보유한 다수당은 소수당 몫 조정위원 1명만 포섭하면 안건조정위 의결정족수(재적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를 채울 수 있다.
가까운 예는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우군으로 여겼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입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자,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법사위로 보냈다. 양 의원의 자리를 대신해 안건조정위에 합류한 민형배 ‘무소속’ 의원의 활약으로 검수완박 법안은 상정 8분 만에 법사위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사례는 더 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출신 의원들 역시 소수당 몫 조정위원 역할을 맡아 강행처리를 도왔다. 지난해 문체위에선 민주당이 밀어붙였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안건조정위를 통과했다. 교육위에선 사학법 개정안이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두 의원 모두 지금은 민주당 소속이다. 환노위에선 민주당에서 제명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찬성으로 탄소중립법 제정안이 처리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신속 처리”를 공언하는 양곡처리법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양곡관리법은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농해수위원들은 26일 “쌀 의무 매입은 포퓰리즘”이라며 안건조정위를 신청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야당 몫 조정위원 한 자리를 윤미향 의원이 차지하고 있어 법안이 안건조정위를 통과하는 건 시간문제다. 법안을 둘러싼 심도 있는 토론보다 당론이 우선인 한국 국회에서 숙의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한영익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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