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욕설
2009년 정조의 ‘비밀 편지’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수신자는 노론의 영수 심환지. 그 편지에서 정조는 최측근 서용보를 “호로자식(胡種子)”이라 칭하고, 소장파 김매순은 “입에서 젖비린내나고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고 비난했다. 사적인 비밀 서신이라고 생각했기에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쓴 것이다. 스스로도 위험성을 인지했는지 ‘찢어버리거나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심환지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정조의 감춰진 면모를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학계에서 이 서신들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심환지는 정조를 방해한 핵심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편지가 공개되자 오히려 정조가 그를 이용해 막후에서 정국을 조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교적 왕도정치를 강조했던 정조가 고도의 정치 기술자였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정조 시대에 대한 접근도 달라졌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막말 파문이 논란을 빚었다. 비공식적으로 한 말이 고스란히 언론을 타고 알려졌고, ‘외교 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부적절한 발언에 맞물린 청와대의 해명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역사에서 정조 시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사적 ‘뒷담화’는 아니듯 윤 대통령의 순방을 바라보는 시선도 여기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칩4동맹 등 한국도 포함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현재 어디에 서 있을까. 해외 순방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금 윤 대통령에게 우리가 캐물어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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