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보다 위험하다"..은혜를 칼로 갚은 살인범[그해 오늘]

한광범 입력 2022. 9. 28. 00:03 수정 2022. 10. 1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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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교수 살인사건 '전용술', 2005년 사형 확정
10대 때 살인..20년 옥바라지 덕분에 감형돼 출소
"2000만원 도와달라" 요구하다 거절하니 잔혹 살해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05년 9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 대법원 3부 심리 사건에 대해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관(이후 대법원장)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사형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범행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있어 처벌을 통한 교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에 대해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인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은인인 대학교수 A씨를 참혹하게 살해한 ‘마산 교수 살인사건’ 범인 전용술(당시 만 49세)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전용술에 대해 법원은 “맹수보다도 위험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자신의 은인이던 대학 교수를 참혹하게 살해한 전용술.
전용술은 이미 10대 시절 사형 판결을 받았던 적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전용술은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72년 당시 여자친구 B씨의 부모가 교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폭행했다. 폭행 사건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전용술은 재판에 넘겨져 징역 장기 8월, 단기 6월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출소 후 폭행 사건으로 B씨가 자신을 떠났다는 이유로 1974년 7월 출근 중이던 B씨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숨지게 했다. 그리고 도주 중 택시를 상대로 강도 짓을 한 후 현금을 빼앗았고 이후 경찰의 추격을 받자 인질극을 벌이다 인질에게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전용술은 검거 후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1975년 4월 “범행이 미성년자의 미숙한 정서와 사려에서 비롯된 점을 참작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모범수로 감형→사회복귀하자 본색

전용술의 초등학교·고등학교 2년 선배로서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A씨는 무기수로 수감 중이던 전용술의 옥바라지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A씨는 자주 면회를 가거나 서신을 보내는 등 전용술을 살뜰히 챙겼다. 이 같은 옥바라지는 A씨가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할 때와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계속됐다. A씨가 이 같이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분에 전용술은 모범수가 됐고, 1993년 3월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가석방 돼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전용술은 출소 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8000만원을 이용해 돈을 벌면서 1995년 1월 결혼해 자녀까지 출산했다. 하지만 1998년 3월 이혼 후 주식투자 등으로 전 재산을 탕진했다. 자살을 고민하던 전용술은 A씨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택시기사로 근근이 돈을 벌던 전용술은 이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용돈 명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받던 전용술은 2000년 12월 A씨에게 “1000만~2000만원을 주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전용술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전용술은 A씨에 대한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에 “나한테 큰 도움을 준 것처럼 소문이 났지만 정작 A씨에게 도움 받은 것은 별로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A씨를 죽이겠다며 수년 동안 칼을 가지고 다녔다. 전용술은 마치 돈을 맡겨놓은 듯이 A씨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돈을 달라고 했다.

이후 2004년 7월 길거리에서 만난 A씨가 “왜 새벽에 수시로 전화를 하느냐”고 꾸짖자, A씨의 단골 술집을 찾아가 술을 마시고 있던 A씨에게 재차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A씨가 “내게 돈 맡겨 놓았느냐”고 반문하자, 전용술은 A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도망갔다.

뻔뻔하게 ‘피해자 탓’ 반복…책 출간 시도도

전용술은 이후 도피를 위해 며칠 후 진주에서 택시기사를 죽이고 차량과 금품을 빼앗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를 당한 택시기사는 수차례 흉기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가까스로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전용술은 이후 8월 5일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검거 당시에도 A씨와 택시기사 C씨를 공격할 때 사용한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전용술은 검거 이후에도 수사기관이나 재판에서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A씨가 신의와 진실을 무너뜨려 자존심을 상하게 해 응징했다”며 “별것 아니었던 요구를 거부해 스스로 원치 않는 길을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선 “A씨가 초래한 일로 구속돼 고통의 나락에서 헤매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1심 법원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를 물건보다도 소홀하게 취급하는 지극히 반문명적 행동을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반복했다”며 “맹수보다도 위험한 인물인 피고인을 또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해 동기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파렴치해 어떠한 참작할 만한 사정이 엿보이지 않는다”며 “범행 수법은 지극히 잔혹하고 문명세계에 어울리지 않아 피고인의 범죄적 악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전용술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상고했으나 대법원은 1심의 사형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전용술의 만행은 사형 판결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전용술은 2011년 9월 자신의 두 차례 살인 경험을 기록한 책을 출간하겠다며 수감 중이던 교정기관에 자신의 글을 출판사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소설 형식이었지만 기존에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범행을 정당화한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한 글이었다. 전용술은 교정기관이 요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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