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국장'은 일본에 무엇을 남길까
일본 무도관에서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는 국장이 대대적으로 거행됐다. 아베가 총격으로 사망한 지 81일 만이었다. 국장 반대 운동은 예상외로 뜨거웠고, 반대 명분도 뚜렷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 궁지에 몰린 건 오히려 일본 정부 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내각은 국장을 강행했다.
일본의 발전과 쇠퇴, 어느 쪽에도 뿌리 깊은 순응주의가 작용해 왔다. 정책집행자들을 향한 저항의 에너지가 나머지 순응하는 세력의 ‘방관’하는 힘을 꺾지 못하는 게 일본 사회이다. 뚜렷한 명분을 갖고 저항 세력이 응집해도 다수는 ‘어쩔 수 없다’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나가보면 기껏해야 20~30명이 모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60대 아래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세대들이 ‘평화헌법 개정 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주제별로 헤쳐 모이는 게 일본 집회의 양상이다. 주요 언론에서도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작고 힘이 없으니 뉴스에서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정치에 대한 일본 젊은 세대의 무관심은 생각보다 더 팽배하다. 이 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 동안 아베 국장 반대 집회는 빈번하게 열렸고, 규모도 상당했다. 국장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집회에는 1만3000여 명이 모였다. 일본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회는 ‘헌법기념일’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사회에서 미덕처럼 여기는 인내, 순응의 에너지를 역으로 폭발시킨 계기는 태평양전쟁이었다. 패전 이후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나뉘었고, 제국주의든 패전이든 전쟁 과오를 둘러싼 반성과 연구, 논의는 지금도 활발하다. 2000년 이후 일본의 만연한 순응주의에 돌을 던진 사건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다. 특정 사건의 발생을 기준점으로 일본 사회를 다시 한번 전후(前後)로 구분 짓게 할 만큼 3.11 동일본대지진은 큰 충격을 던졌다. 전쟁이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와 내셔널리즘이 결합했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줬다면 3.11은 근면과 성실, 또 안심·안전이라는 구호에 가려져 있던 ‘매뉴얼 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 잠시나마 목도할 수 있었던 저항의 에너지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앞두고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결국, 기시다 내각은 저항을 무릅쓰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거행함으로써 ‘일본=아베’라는 등식을 공고히 했다. 국장의 법적 근거와 50년간 전례가 없다는 건 둘째 치고, 여전히 진행형인 아베의 정권 사유화 의혹과 정책적 과오 등 부정적인 평가의 요소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침없이 국장을 결정했다. 더 놀라웠던 건 ‘검토’ 없이 ‘국장 거행’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검토 중이다’라는 표현을 건너뛰고, ‘결정’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검토’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낼 땐 이미 ‘하지 않겠다’거나 ‘하겠다’는 내부 결정이 끝난 상태이고, 수락이나 거부, 둘 중 하나의 뜻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맥락과 문맥, 뉘앙스를 곁들여 유추 해석하는 것 또한 일본인의 소통 방식이다. 그럼에도 기시다는 굳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장 거행에 대한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최장수 총리, 부흥과 경제 재생, 외교 실적, 폭력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 기시다는 ‘설명 책임’을 다하겠다며 국장의 이유를 열거했지만 끝내 여론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법적 근거도 없이 적어도 160억원가량의 세금을 쓴, 살아서도 죽어서도 논란 많은 전 총리의 국장.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국회의 동의도 없는 국가 행사는 전체주의를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는 다시 한번 이를 용인했다. 전후 최장수 총리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그의 국장 거행은 현대 일본의 특징을 규정 짓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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