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골든타임은 사라지고 있다
진영 전쟁으로 번진 비공개 발언 논란
정치인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걱정부터 한다. 심상치 않은 인플레이션과 무역, 환율 움직임이 미·중 신냉전과 같은 구조적 변화로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못지않은 경제 침체가 예상된다고들 한다. 이 여파로 가장 힘든 사람들이 자신을 ‘대리인’으로 뽑은 서민층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어제도 환율은 1400원 선을 넘겼고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높아진 금리로 채무에 기대 집을 사거나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들의 시름이 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올겨울 에너지 대란이 올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짙어지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드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고통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세계 금융, 무역 변동에 취약한 우리로서는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견뎌내는 일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터득했듯이 고통이 공평하게 오진 않는다.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와 자영업자, 가계부채 취약 계층의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 달러 사재기를 하는 국민들을 탓하기 전에 공동체의 고통 분담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정권과 정치권을 탓해야 한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도 실감하겠지만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건 여론이다.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 고통 분담을 설득하려면 여론 뭉치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 위기를 살필 생각뿐”이라는 대통령 말과 달리 비속어 논란, 영빈관 신축 예산 파문과 같은 ‘대통령실발(發)’ 이슈는 여론을 쪼개고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뜨렸다. 국가 최고 기관인 대통령실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위기 대응 첫 단계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이라는데 그 첫 단계부터 헛발을 짚는 느낌이다. 국가 정상의 해외 순방 현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분주한지 감안한다 해도 외교 사안으로 번진 대통령 발언 파문을 공식 해명하는 데 10여시간이나 걸린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발언이 공개된 이상 비속어 부분은 그것대로 유감을 표명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은 진상 확인을 요청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비공개 발언 논란으로 해외 순방 성과가 무색해진 것보다 경제 위기를 수습할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는 걱정이 더 크다.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을 동원하는 게 대통령의 임무다. 그런데 대통령 말이 정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순간 진영 논리가 국정 현안을 압도한다. 국민들마저 나뉘어 ‘대리전’을 펼치는 일은 전임 정부에서 익숙했던 장면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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