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보내던 쿠바 "동성결혼 공식 허용"
가톨릭 반대에 '마찰' 우려
성소수자를 탄압했던 공산권 국가인 쿠바에서 동성결혼이 공식 허용될 예정이다. 쿠바 국민의 약 3분의 2가 이를 허용하는 가족법 개정안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면서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알리나 발세이로 구티에레스 쿠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26일(현지시간) 전날 시행된 가족법 개정 여부 국민투표 결과 찬성 66.87%, 반대 33.13%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가족법 개정안에 관한 국민투표는 유효표 과반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예비 결과에 따르면 투표권을 가진 쿠바인 840만여명 중 약 74%가 이번 국민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바 정부가 1957년 제정된 가족법을 대체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개정안은 ‘남성과 여성의 자발적 결합’이라 했던 기존 결혼에 대한 정의를 성별과 무관하게 ‘두 사람 간 자발적 결합’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권, 시민결합 합법화, 아동 권리 확대, 남녀 간 가정 내 권리와 책임의 공평한 분배 등에 관한 조항도 새로 시행될 예정이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선관위의 발표 직후 트위터에 “정의가 실현됐다”고 썼다. 그는 “오늘부터 쿠바는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몇 년 동안이나 이 법을 기다려온 쿠바인들에게 여러 세대에 걸친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쿠바는 1959년 공산혁명 직후 성소수자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등 탄압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고 성적 지향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하는 등 성소수자 권리는 급격히 향상됐다.
관영 언론 그란마도 “차별을 받았던 이들, 전통에서 벗어난 가족, 사랑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부부를 위한 역사적인 변화”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예외 없이 원칙으로 두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은 ‘예’라고 답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쿠바 내 영향력이 큰 가톨릭교회 등 종교계는 가족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법 개정 이후 일부 마찰이 예상된다. 교회와 종교단체들은 동성결혼이 허용되면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변하게 돼 가족 간 결속력이 약화하고, 핵가족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쿠바는 지난 2018, 2019년에도 개헌을 통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길을 열어주려 했으나 종교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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