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논쟁적인 인물, 아베.. '국론 분열' 속에 치러진 국장
"일본을 이끈 지도자" vs "민주주의 없애"
기시다 "아베는 용기의 사람" 추도사
“아베 반대파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아침 일찍부터 헌화하러 왔다.”
“아베 때문에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됐는데 국장이라니 말도 안 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國葬)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의견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렸다. 생전에도 강한 호·불호를 몰고 다닌 아베 전 총리가 끝내 국론 분열 속에 영면에 든 것이다.
숨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27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렸다. 지난 7월 참의원 유세 중 총에 맞아 사망한 지 81일 만이다.
무도관 인근엔 아침 일찍부터 아베 찬성파와 아베 반대파가 편을 나눠 운집했다. 구단자카 공원엔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는 시민의 행렬이 몇 ㎞나 늘어섰고, 긴카 공원에선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장 반대 의견이 우세했는데도 일본 정부는 국장을 강행했다.
"아베 사망 너무 속상해" "국장에 세금 쓰지 말라"
구단자카 공원을 찾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은 한여름 같은 더위 속에서도 2시간 이상 차분히 기다려 헌화했다. 한 50대 부부는 “일본을 이끈 지도자인 아베 전 총리가 앞으로도 계속 활약했으면 했는데, 이렇게 가다니 너무 속상해서 왔다”고 말했다.
긴카 공원에선 국장 시작 3시간 전부터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석자들은 행진하며 "아베 전 총리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빈곤하게 했다”며 “국장에 세금을 쓰지 말라”고 외쳤다. 58세 남성은 “아베노믹스는 부자에게만 혜택을 줬을 뿐, 대다수 국민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도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국장 반대 시위가 열렸다. 경찰 2만 명이 배치될 정도로 분노의 열기가 뜨거웠다.
해리스 부통령, 모디 총리, 한덕수 총리 등 참석
오후 2시 아베 전 총리의 유골이 도착하면서 국장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자위대가 19발의 조포를 발사하고 의장대가 아베 전 총리 영정을 향해 경례했다. 후지산을 본떠 만든 제단에는 유골과 의원 배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전의 강한 의지를 뜻하는 블루리본 배지가 놓였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국장에는 해외 인사 700명을 포함해 약 4,300명이 참석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완강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이 참석했다. 한국 조문단으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윤덕민 주일본대사, 유흥수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이 참석했다.
기시다 "아베는 용기의 사람" 스가 "젊은 사람에게 희망 줘"
장의위원장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추도사에서 “일본과 세계의 앞날을 보여주는 나침반으로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 동안 힘을 다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며 아베 전 총리의 이른 죽음을 애통해했다. 이어 “당신이야말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한결같이 진실한 사람, 뜨거운 정을 가진 사람이었고, 친구를 유난히 아끼고 부인을 깊이 사랑한 좋은 남편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 미일 동맹 강화, 쿼드(Quad) 창설 기여 등 아베 전 총리의 외교 부문 성과도 상기했다.
아베 2차 내각의 2인자였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당신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일본을 만들고 싶다’, ‘젊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국민에게 말을 걸었는데, 헌화하려고 모인 시민 중 20~30대가 적지 않다”며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을 기렸다.
조기 게양 묵념 실시 요청 안 해... "조문 강제 안 해"
국장을 앞두고 일본 정부는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에 조기 게양이나 묵념 등을 실시하도록 요청하는 ‘각의 양해’를 내지 않았다.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국장은 물론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러진 대부분 전직 총리 장례식 때 각의 양해를 냈다. 국장을 놓고 여론이 극도로 분열된 것을 감안해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정치적 평가나 애도 표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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