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푸틴이 '동원령' 도박에 나선 이유

2022. 9. 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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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에 서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영토 보전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당연히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또 언급했다.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동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성인 남성 모두가 동원 대상이었다. 이번에는 예비역으로 한정한 부분 동원이다. 전시 총동원령이나 전면 징집은 아니다. 총동원 가능 예비군 2500만명 중에서 우선 30만명을 징집하는 것이다. 30만명은 전체 동원 대상의 1%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투입했던 정규군 병력 15만명의 2배 가까운 증원이다.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철저한 항전을 다짐했다.

지금까지 푸틴 정부는 동원령 발동을 꺼려왔었다. 직업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것은 강한 반발을 부르기 때문이었다. 이미 후유증이 심각하다.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푸틴 대통령은 동원령을 단행했을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전세 악화로 인해 추가 파병이 절실한 탓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주(州) 대부분에서 러시아군을 축출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던 친정부 인사들도 러시아군의 무능을 지적하고 나섰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강제 동원은 없다'는 입장을 뒤집어 예비역 소집에 나섰다. 전선의 병력 부족을 메우면서 반격을 펼치겠다는 의도다.

물론 동원된 예비역들이 전선에 당장 투입될 수는 없다. 그들이 재교육을 받은 후 배치되려면 적어도 수개월은 걸린다. 따라서 국경 경비나 지역통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존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일단 투입하고, 공백이 생기는 국경 경비 등에 징집병들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략에 실패한 이후 러시아가 승리를 외치는 최소한의 지역은 동부 돈바스 지역이 됐다. 이곳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러시아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2014년부터 실효 지배 중이다. 푸틴 정부는 이를 지원해 왔다. 이번 동원령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다.

셋째, 국내 민족주의자, 보수파들의 불만을 누그려뜨리려는 목적도 보인다. 러시아 내에선 총동원을 요구하는 강경 의견도 상당하다. 그들은 동원령을 꺼리는 푸틴 정권의 방침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예를 들어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장은 푸틴의 경쟁자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지지할 뿐 아니라 총동원령을 발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원령까지 주저한다면 이들은 푸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번 발동은 이같은 딜레마 속의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국수주의를 고무하면서 지지 기반을 확장해온 푸틴 대통령은 이제 거꾸로 국수주의에 얽혀 '동원령' 선포라는 도박에 나선 셈이다. 이는 전쟁의 향배뿐 아니라 푸틴의 정치적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원령 발동이 '특별군사작전'이 아닌 '본격적인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7개월 동안 이어진 전쟁이 더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종종 '푸틴의 전쟁'으로 불려왔지만 이제 '러시아의 전쟁'이 됐다. 설사 푸틴 대통령이 사라진다 해도 전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전쟁 장기화와 격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확전이 아니라 평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도 숱하게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전쟁의 전환점 마련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종전이나 휴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내는 지혜가 있다. 반드시 평화적 해법을 찾아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끝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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