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②] 다양성과 필수적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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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이 2022년 하반기를 맞아 새롭게 준비한 '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는 메카닉 액션게임 '어썰트', '레이크래쉬' 등을 개발한 개발사 코디넷 대표 출신의 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이 핀란드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경험한 일과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한국, 혹은 아시아와는 다른 유럽의 개발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주 >
[글=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일요일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제게 일요일은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로 남아 있습니다. 뒷산 약수터도 가고, 가끔은 여행도 다니며, 친구들과 만나 오징어 게임을 하루 종일 하며 놀 수 있는 유일한 하루였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일요일 이른 아침은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것도 좋았지만 아침 일찍부터 TV에서 하는 만화는 부모님보다 저를 항상 먼저 깨우는 알람과도 같았습니다.
TV에 나오는 만화는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지만 그 시절에는 잘 몰랐죠. 그냥 재미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때 봤던 대부분의 만화들은 주인공의 머리색이 노랗거나 빨간색(가끔 파란색과 갈색 등도 있기는 했죠)이어서 서양에서 만들어진 만화라고 생각 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돈으로 오락실에 갈 수 있게 되면서 게임에 한국 국적 또는 한국계 캐릭터가 나오면 그렇게 흥분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복과 태극기 그림만으로도 요즘 말하는 '국뽕'이 차오르는 마음에 아낌 없이 동전을 쏟아 넣었죠.
그리고, 홍콩 영화에 열광하던 시절을 지나고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함께 헐리우드 대작들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어느 순간 아시안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였다가 이제는 "역시 한국 사람들은 뭘 해도 잘 해!"로 바뀌게 됐죠.
요즘 영화나 만화 그리고 게임을 보면 캐릭터나 배경이 정말 다국적입니다. 주인공은 더 이상 금발의 백인이 아닌 경우도 많고, 배경 곳곳에도 아시아의 색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아시아 시장의 성장, 아시아 자본의 유입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WHY: Despite a very diverse Gaming Player Base (e.g. 46% of Gamers globally are women, more than a third are non-white), the Gaming workforce is seeing a lot of underrepresentation in terms of gender, age, ethnicity, sexual orientation and more. We want to support talent from underrepresented groups to accelerate their careers in the industry, while learning from each other and those who see inclusive design as second nature.
게임 콘텐츠만이 아니라 팀 구성과 조직 문화에도 이제는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Diverse by Design' 세미나 소개글 일부, 슈퍼셀 패밀리 행사 중),
우리는 보통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오래된 역사의 굴레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전부는 아니죠. 우리 스스로도 백인을 대하는 자세와 다른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분위기, 사람들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문화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느 정도 강제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 강제성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고, 일관되게 오래 유지되면 그것이 결국 대다수가 자연스럽다고 인식하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됩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의 다양성은 바로 이 시점에 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인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어느 정도 강제적인 방향성이 계속 제한되면서 서서히 자연스러워져 가고 있는 시점인 거죠. 더욱이 이런 방향성과 연구들을 서양에서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미래에 문화적 우위를 그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런 막연해 보이고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세계적인 주제들에 투자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제 만화에서는 노란색이나 빨간색 머리의 주인공만 나오지 않습니다. 무지개색 머리까지 나오고 있죠. 게임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문화적, 환경적, 배경적 다양성이 존중의 의미를 넘어 의도적으로, 그리고 의무적으로 자연스럽게 혼재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더욱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치열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유럽과 북미 지역 이외의 콘텐츠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유럽의 제도를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도적인 가이드라인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가 될 경우 어느 순간 하나의 문화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을 지키지 않거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은 뭔가 어색하고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 게임들은 어느 순간 비평가들을 넘어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을 위험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다양성을 넘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라고 부르는 틀이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은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와 문화에 의한 것이지 수리적이거나 절대적인 논리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과 이게 대체 무슨 관계냐고 묻는 분도 있으실 듯한데, 아주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은 유럽 입장에서의 외국 게임들에게 이런 다양성을 강제하거나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관점이라는 것이 생겨 버리게 되면 그때는 강제적인 제도의 문제가 아닌 문화적인 시각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됐을 때의 이질적인 느낌은 오히려 강제화된 제도보다 더욱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는 우리도 헐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 배우가 나오면 어색해했지만, 어느 순간 그 어색함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러워지고, 오히려 동양인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마케팅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보통 해외 게임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게임의 종류나 유행하는 장르, 통계 사이트들이 알려 주는 시장에서 소위 잘 먹히는 게임은 어떤 것인지 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변화하는 플레이어들의 관점이나 사회적 요구사항, 그리고 문화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알기 어렵기도 하지만 안다고 해도 향후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예상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현상과 변화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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