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전요환..법의 틈새로 '마약·사이비 종교 왕국' 짓는 탐욕

한겨레 2022. 9. 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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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25 - '수리남' 전요환
넷플릭스 제공

절대적으로 금기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금기사항으로 보기 어려운 두 가지가 있다. 정신과 육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사이비 종교와 마약이 그것이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강력한 중독성이다. 절대적 금기대상임에도 이단이나 마약은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그런 두 가지가 섞인다면 사회적 폐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적 상황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에서 평범한 한국인들을 포섭하여 보석 원석으로 속인 마약을 유통하다 체포된 마약밀매조직의 수장을 ‘개척교회’ 목사로 설정한다. 목사 ‘전요환’(황정민)은 수리남에서 마약밀매를 하다가 국제 사법 공조로 브라질에서 체포되고 한국으로 압송되어 징역 10년형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은 마약사범을 드라마로 가공한 인물이다. 그는 이단과 마약이 섞일 경우의 폐해는 물론, 마약사범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한계를 동시에 환기한다. 전요환의 범죄행위를 통해 마약에 중독된 맹목적 신앙의 폐해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한국 사법부의 마약사범 판결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제공

전요환은 “아홉살 때 부모님 죽고, 먹고살려고 제일 처음 한 일인 마장동에서 고기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다 인천 최대 필로폰 밀매 조직의 운반책으로 마약범죄에 가담한다. 이후 투자자에게 필로폰을 제공하여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관광지 개발 등의 사기 행각을 벌이다 안기부 요원에게 체포되어 고초를 겪는다. 거액을 상납하고 풀려난 그는 개척교회 목사로 변신하여 신도들을 필로폰에 중독시켜 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이어간다. 현란한 언변과 필로폰을 넣은 성찬식 포도주로 신도들의 영혼을 장악했지만, 자신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 안기부 요원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계속된 상납 요구를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안기부 요원을 살해하고 한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남미 국가 수리남으로 피신한다.

군부 쿠데타로 불안한 수리남의 정치 상황을 이용하여 범죄자 출신 대통령과 결탁한 전요환은 콜롬비아에서 넘어오는 코카인 밀매 독점권을 확보하고 마약왕으로 군림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광적인 믿음으로 충만한 여신도들을 마약 밀매에 이용하고, 군사훈련을 시킨 남자 신도들을 경호원으로 부리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사칭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우리 내부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사탄들이 있는 게 분명해”라고 신도들을 겁박하면서 절대권력을 행사하지만, 그는 마약으로 이단의 맹목적 신앙심을 끌어낸 사탄일 뿐이었다.

마약의 중독성과 이단의 맹목적 신앙심으로 건설하여 영원할 것 같았던 전요환의 왕국은 한국 국정원의 국제 공조 수사로 흔들린다. 전요환의 협잡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리고 마약사범으로 체포된 홍어수출업자 강인구(하정우)가 국정원 미주지부 팀장 최창호(박해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검거작전에 투입된다. 전요환은 혹시 모를 위험 요소를 반복적으로 확인할 만큼 치밀했다. 그러나 전요환은 국정원의 일방적 작전 지시를 따르지 않을 정도로 현장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난 강인구 때문에 궁지에 몰린다. 마침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서 죽음을 낳는다”는 성경 구절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전요환의 존재 기반이었던 마약과 사이비 종교의 사회적 폐해는 여전하다. “지독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이 참 좋아. 대부분 사람들은 실재하지 않는 걸 믿으려고 하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마약에 환장하는 거거든. 약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게 순간적으로 보이거든.” 전요환의 이러한 주장에서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해묵은 경고가 떠오른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마약과 사이비 종교만이 아니다. 이래저래 법의 허점을 이용한 주가조작 등의 사기 행각에 대해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래서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현실을 냉철하게 통찰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절이다.

충남대 교수·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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