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지아 작가 "'빨치산의 딸'에서 해방..유시민·윤학수 귀인 덕분"

신재우 입력 2022. 9. 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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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지아 작가 ⓒ이대진 (사진=창비 공) 2022.09.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이제 '빨치산 아버지'에서 '빨치산'을 덜어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빨치산의 딸' 작가 정지아(57)가 32년 만에 낸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화제다. 작가 유시민이 올해의 책으로 소개한 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알라딘에서 종합 1위, 예스24는 4위에 올랐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주인공 '아리'가 장례식장에서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주변 인물을 만나며 그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남 구례에 살고 있다는 정지아 작가를 화상으로 만났다.

[서울=뉴시스] 아버지의 해방일지 (사진=창비 제공) 2022.09.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베스트셀러의 배경에는 두 귀인이 있다

"책의 성공에는 두 명의 귀인이 있어요."

지난 10일 유시민 작가는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올해의 책으로 추천했다. 작가와 "어떠한 친분도 없는" 유 작가의 추천 이후 책은 증쇄를 거듭해 5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 작가가 꼽은 첫 번째 귀인이다.

두 번째 귀인은 작품 속 '윤학수'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다. 유 작가가 책의 흥행에 기여했다면 윤학수는 책의 탄생을 도왔다. 작품 속 학수는 사회주의자 아버지 '상욱'의 실제 아들은 아니지만 자식보다 더 자식 같은 모습을 보이며 상욱을 챙긴다. 작 중 등장하는 사건이기도 한 학수가 경로당을 찾아 버럭하며 상욱의 기를 살려주는 것도 실제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학수가 경로당을 찾아간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순간 정말 뼈저린 반성이 됐어요. 우리 아버지도 보통 아버지구나. 저는 아버지가 언제나 굳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기가 살고 죽고 이런 건 상상조차 안 해봤거든요. 그 말을 들을 때 이 소설의 방향이 잡혔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반성의 마음'이 소설의 정서로 잡혔다. 그 전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회상하며 조금씩 써뒀던 원고는 이후 "일필휘지로 써졌다"고 했다. 글이 진지해지지 않게 매일 소주 두 병을 마시며 흐르듯이 소설의 뒷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빨치산의 딸'로 사는 일

소설 속 '아리'의 어린 시절은 실제 작가의 삶과 거의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으로 감옥에 수감되며 정지아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당시 정지아는 버틸 힘을 문학 작품에서 찾았다.

"문학에는 나보다 더 고통스럽고 절망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그래서 학생 때 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모든 문학이 거의 저의 구원처였죠. 학교에 갈 때 교과서는 안 가져가고 소설책만 3~4권씩 챙겨갔죠."

그 시기 탐독한 문학작품들은 정지아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빨치산의 딸'이다 보니 밖에 할 수 없는 말"을 혼자서 글로 적어 내려가며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1990년 발표한 장편 '빨치산의 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실록'은 판매 금지가 되고 정지아는 이 책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정지아는 32년 사이 정서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빨치산의 딸'을 내고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많이 해소됐다"는 그다. 어디 가서도 "내 아버지가 빨갱이다"라고 말할 수 없던 학창 시절을 겪으며 쌓인 분노가 작품을 내고 사라졌다.

"빨치산의 딸만 아니었으면 저는 화를 안 내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그 이후 살다보니 제가 원래 분노가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분노할 일이 별로 없어요."

이 때문에 '빨치산의 딸'의 연장선에 있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층 가볍다. "뼛속까지 유물론자"인 아버지에 대한 딸의 애증 어린 감정이 유쾌하게 드러난다.

[서울=뉴시스] 정지아 작가 ⓒ이대진 (사진=창비 공) 2022.09.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제 아버지에 대한 장편은 안 쓸 것 같아요"

"별것 아닌 기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 혁명가가 아닌 순간의 아버지, 거기서 어린 내가 발견한 것은 뻔한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뻔한 행동이었다."(66쪽 중에서)

정 작가는 자신이 "체화되지 못한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소설가"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체험이 그대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완전히 이해해야만 글이 써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도 아버지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완성했다.

"저는 소설 속 아리와 달리 실제로는 아버지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감옥에 다녀오신 후 제가 이미 사춘기가 지나 아주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을 뿐이죠."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쓸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빨치산 아버지'에서 '빨치산'을 덜어낸 아버지로 마음속에 남기로 결심했다.

소설을 쓰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은 조금 덜어졌을까?

"미안함은 미안함으로 남는 거죠. 영혼이라도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 마음을 좀 알아주실까 싶은데 아버지가 '뼛속까지 유물론자'라 알아주실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도 아버지에게 미안한 걸 알기라도 했으니 그게 어디에요. 하하."

☞공감언론 뉴시스 shin2r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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