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아프간에서 '미국 빈자리' 노렸지만 성과 부진..그 이유는?
블룸버그통신은 26일(현지시간) 중국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각종 투자를 약속한 뒤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양국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집권 이후 아프간은 경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아프간 예산의 약 80%는 국제사회의 원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아프간 원조를 중단하면서 경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은 위기에 처한 탈레반에 손을 내민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중국은 아프간 광물 개발 지원을 약속하고 경제 원조를 시작했다. 탈레반 측도 “중국은 우리의 핵심 파트너이며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며 화답했다. 이후 양측은 고위급 회동을 통해 관계 강화를 도모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 후 중국과 아프간의 관계는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아프간 내 신장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ETIM은 아프간과 시리아 등지에 근거지를 둔 위구르족 무장단체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신장 서부 지역에서 테러 등을 일삼은 전적이 있다. 탈레반의 가장 가까운 동맹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으로 ETIM이 다시 활개를 치며 신장 지역을 침투할까 봐 경계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 전후로 탈레반 대표들과 수차례 만났고, 지난 3월엔 “중국은 아프간 측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ETIM을 포함한 모든 테러 세력을 단호하게 단속할 수 있는 효과적인 조처를 하길 바란다”는 성명까지 공개했다. 이에 수하일 샤힌 도하 탈레반 정치국장은 ETIM이 아프간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다며 “그 누구도 다른 나라에 대항하는 데 아프간 땅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거듭 입장을 밝혔다.
탈레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ETIM은 아프간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ETIM이 테러 활동을 위한 능력 향상을 목표로 현지 탈레반 지휘관들과 동맹을 맺고 무기를 “은밀하게” 구입하고, 아프간에서 “작전 지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이 ETIM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기란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왔다. 영국 싱크탱크 반테러이슬람신학(ITCT)의 파란 제프리 부국장은 “탈레반은 ETIM을 지난 20년간 미군·나토군에게 맞서 탈레반과 함께 싸운 이들이라 여긴다”며 “이러한 유대관계는 등을 돌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탈레반은 중국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ETIM 추방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탈레반이 ETIM을 대중국 ‘카드’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중국 정부는 탈레반 정권에 약속했던 광물 개발 등 대규모 투자를 보류한 상태다. 앞서 중국 광물 개발업체인 중국야금(MCC)은 지난 2007년 아프간 동부 로가르주 메스 아이나크 구리광산에 대한 30년간 개발권을 따낸 바 있다. 탈레반 정권은 해당 프로젝트의 재개로 매년 수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광산은 지금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의 아프간 북부 아무다리야 분지의 석유·가스 개발사업도 지지부진하다. 계약에 따르면 CNPC는 이곳에 정유소를 지을 예정이었지만 정유소조차도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탈레반은 중국으로부터 기대했던 투자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분노하고 있다. 칸 잔 칼로코자이 아프간 상공회의소 부소장은 인터뷰에서 “중국의 투자는 단 한 푼도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중국의 많은 회사가 아프간에 와서 우리를 만나고 연구한 다음 그냥 사라져 버려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불안한 탈레반 정권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라파엘로 판투치 선임 연구원은 탈레반이 전쟁을 20년간 치렀는데도 저항 세력에서 통치자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했으며, 정부가 정신적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자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게 중국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현지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할 능력이 거의 없고, 경영 경험도 거의 없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나라로 기업들을 옮기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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