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려야 지구가 살아난다"[미래로 가는 농업](2)
윤성영 댄스위드비 대표가 ‘꿀벌연대’를 조직한 이유
[주간경향] 모든 벌은 한때 육식 곤충이었다. 지금의 말벌처럼 작은 곤충을 잡아먹었다. 꽃이 지구에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약 1억5000만년 전 생겨난 벌은 1억년 전 꽃을 만나게 된다. 꽃에 앉은 벌레를 먹으려다가 꿀과 꽃가루도 함께 먹게 됐을 것이다. “아, 이거 맛있네. 모두 와서 먹어봐.” 그렇게 벌의 일부는 꿀을 먹는 채식으로 식단을 바꿨고, 지금의 꿀벌로 진화했다. 벌이 꽃가루를 여기저기 나르면서 다양한 종의 꽃식물이 등장했다. 꽃과 벌은 함께 진화하면서 지구를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위기는 인간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꽃이 가득한 들판이 농경지로 바뀌어 먹을거리가 줄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로 방향 감각을 잃은 벌들은 꿀을 찾으러 나갔다가 객사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먹이활동을 하러 나간 벌들이 느닷없는 추위에 동사하거나, 온난화로 꽃이 일찍 피고 지면서 꿀을 채취할 기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꿀벌이 사라진다
인간이 꿀벌이 생존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면, 꿀벌 없는 지구를 맞이할지 모를 일이다. 꿀을 맛볼 수 없는 것은 물론, 꿀벌의 가루받이로 열매를 맺는 다양한 과일도 귀해질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의 아름다움이 한풀 꺾이고, 인간의 생활은 곤궁해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2018)에 따르면 100대 농산물 생산량에서 꿀벌의 기여도는 71%에 달한다. 그 경제적 가치를 그린피스(2017)는 373조원으로 추산했다. 댄스위드비의 윤성영 대표가 꿀벌과 인간의 공존을 목표로 ‘꿀벌과 함께 춤을’이라는 뜻의 법인을 세운 이유 중 하나다.
20년 이상 디자이너로 일하다 2018년 커머스 플랫폼 ‘프롬’을 창업한 윤 대표는 그곳에서 토종꿀 생산자를 만나면서 꿀벌의 매력에 빠졌다. 윤성영 대표는 지난 9월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꿀벌과 꽃이 함께 진화하면서 지금 지구생태계의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졌다”면서 “꿀을 모아 비축하고 군락을 이루면서 사회성 곤충으로 진화하는 반복적인 활동이 지구생태계에 엄청나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토종꿀 판매로 토종벌의 보호 가치를 알리면서 양봉농가와 토종벌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올해 2월 댄스위드비를 창업했다.
토종벌은 벌통 하나에 약 1만마리, 서양벌은 약 3만마리가 산다. 꿀벌은 독립적인 개체지만 꿀벌군락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초(超)개체’다. 개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내부의 의사소통과 조율을 통해 혼자서는 불가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윤 대표는 “일벌의 수명은 3~6개월이지만 벌통이라는 군락 자체는 자연재해 등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초개체라는 형태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꿀벌 중에서도 토종꿀벌에 주목했다. 경쟁이 치열한 서양벌 양봉과 달리, 토종꿀 사업은 파고들 여지가 있어 보였다. 지역을 이동하면서 하나의 꽃꿀만 주로 채취하는 서양벌 양봉과 달리 토종벌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만 사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토종꿀은 마치 와인처럼 지역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미식의 관점에서 수요가 있다고 보고 토종꿀 검사법을 아는 전문가들과 손잡고 토종꿀 사업을 시작했다.
이내 핑크빛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농약 탓에 꿀벌군락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20년 뒤에는 꿀벌이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4000억원 규모의 국내 벌꿀 시장을 토종꿀에서 시작해 장악해보고자 했는데, 좋아할 일이 아니었죠. 꿀벌이 사라져 생태계의 커다란 체인이 끊기고 심각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는 큰 문제에 봉착한 거죠.” 토종꿀의 가치와 꿀벌의 위기를 알려야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윤 대표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전까지의 대멸종에서 생태계 최상위 종이 살아남은 적은 없다”면서 “꿀벌을 살리는 게 인류를 살리는 일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건강한 꿀벌이 건강한 지구 만들어
석기시대 벽화에 벌꿀 채취 모습이 있을 정도로 꿀벌과 인간의 인연은 깊지만, 현대적인 양봉이 본격화한 건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벌을 사육하면서 꿀과 로열젤리를 전부 가져가는 대신 꿀벌에게는 겨울을 날 식량으로 당 성분만 제공하는 방식이다. 윤 대표는 이렇게 꿀벌의 생산물을 약탈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겨울을 날 수 있는 정도의 꿀은 남겨놔야 한다고 했다. “한두 번은 모르지만 10~100년 이런 방식으로 키우면 꿀벌의 체질이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100% 당 성분으로만 키우면 꿀벌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발도르프 교육법으로 유명한 루돌프 슈타이너는 양봉 전문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100년 전 한 말입니다.”
기후변화와 농약 외에도 꿀벌의 영양상태를 악화시키는 착취적인 사육 방식이 꿀벌의 생존을 위협한다. 영양 부족으로 꿀벌의 체액을 빨아먹고 사는 꿀벌파괴응애 같은 해충이나 낭충봉아부패병 등 전염병에 취약해진다. 낭충봉아부패병에 특히 취약한 토종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은 2020년 육지와 20㎞ 떨어진 전북 부안군 위도에 토종꿀벌을 격리해 키우는 육종장을 세우기도 했다.
댄스위드비는 단순히 꿀벌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쇼핑몰에 그치지 않고, 꿀벌을 사랑하는 이용자들 간의 자발적인 소통과 참여가 이뤄지는 공동체인 ‘커뮤니티 커머스’를 지향한다. 그래서 꿀벌과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인 ‘꿀벌 연대’를 조직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꿀벌의 생태를 배우는 ‘댄비학교’, 판매금의 일정액을 토종벌 부흥에 활용하는 ‘댄비마켓’, 토종벌꿀 생산자의 벌통을 후원하고 밀원지를 지키는 ‘댄비허니팟’ 등이다. 참가자들은 배우고, 만들고, 소비하면서 토종벌을 보호하는 것이 곧 지구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편리만을 따진 기성세대가 초래한 위기다. 불편함과 희생을 감수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꿀벌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있다. “침을 쏘면 죽는데도 애벌레를 지키려 침을 쏘고 대신 죽죠. 꿀벌 군락에 새 여왕벌이 나와 이사(분봉)를 하는 중에도 뒤처진 늙은 벌을 끝까지 기다립니다. ‘모두가 나’라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죠. 꼭 꿀벌 같은 초개체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역시 각자가 가진 재능과 열정으로 가치 있는 일을 지향하면서 함께한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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