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는 한국에 힘 뺄 여유 없다..총리 자리마저 위태

김소연 2022. 9. 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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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아베 국장으로 지지율 급락
기시다 총리 자리마저 불안정
"양국 모두 상황 어려워..시간 갖고 풀어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1일(현지시각) 맨해튼 유엔총회장 인근의 콘퍼런스빌딩에서 낮 12시23분부터 약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

“현시점에서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다. 일·한 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한국 쪽과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22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유엔총회 성과를 발표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어떤 여건이 조성되면 한국과 정식 회담을 하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시다 총리가 말한 ‘일관된 입장’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양국 간 중요 현안 문제에 대해 한국이 먼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일본의 주요 당국자들은 한·일 관계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 해 왔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굴욕외교’라는 혹독한 내부 비판을 받으며 추진해 온 관계 개선 노력에도 당장 ‘성의 있는 호응’을 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친 셈이다. 이런 구도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양국 정상이 2년9개월 만에 어렵게 마주 앉은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자민당에서 가장 온건파라 손꼽히는 기시다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정치 현실이다. 27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과 자민당과 통일교 문제가 기시다 총리를 옥죄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이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내각 지지율이 43%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무려 14%포인트가 하락했다. <마이니치 신문> 조사에선 29%까지 떨어졌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불거진 자민당과 통일교의 유착 의혹과 성급히 결정된 국장 때문이다. 이 두 현안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부정적 의견은 60~70%에 이른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아사히 신문>에 “어디서 반전을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계속 지지율이 내려가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가 자리를 위협받을 정도로 현재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자민당 내 소수파벌 출신인 기시다 총리에겐 여론의 향배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계에선 정권이 교체되는 조건으로 ‘아오키 법칙’이 자주 거론된다. 정권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 등을 지낸 아오키 미키오 전 의원은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의 합계가 50%를 밑돌면 정권 운영이 어렵다”는 법칙을 주장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로, 일본 정계에서는 신빙성 있는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경우 지난해 8월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 26%, 자민당 지지율 26%가 나온 뒤, 차기 총재 선거에 불출마하겠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아베 전 총리도 2020년 5월 내각과 자민당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하자, 8월 사임을 표명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정권을 끌고 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뒤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운명이 바뀐 건 지난 7월8일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아베 전 총리가 총격으로 숨지면서부터다. 일단 사망 직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선 압승을 거뒀다. 그러자 기시다 총리의 장기 집권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숨지게 된 주요 원인이었던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폭로되며, 여론은 요동쳤다.

지지율 반전을 위해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대대적 개각을 단행하고, 자민당 자체 조사로 통해 통일교와 관계가 있었던 의원의 실태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돌아서지 않았다. 새 내각에서도 통일교 관련자들이 속속 드러난 데다, 자민당의 조사 역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의혹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베 전 총리 국장이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기시다 총리는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국장을 국회 논의도 없이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해 버렸다. 나아가 자민당이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와 관계를 조사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국장 반대 분위기가 확산됐다. <아사히 신문>은 “여론의 반감을 샀던 국장이 27일 끝나지만 물가 급등, 통일교 문제 등이 계속 타격이 되면 기시다 정권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국과 타협을 시도하면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양국 모두 조급히 나서기 보다,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정치학·현대한국연구센터장)는 <한겨레>의 통화에서 “한·일 관계는 외교 문제이면서 국내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지지율이 낮은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며 “현금화 문제가 시급히 풀어야 할 현안이지만, 양국 국내 상황을 봤을 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유엔총회에서 만남이 이뤄졌으니,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내년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에서 회담을 거듭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해선 “현금화 해법을 놓고 (한국의) 피해자와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금 이대로라면 “합의는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위안부 사례’를 반복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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