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푸틴이 만든 위험한 세계 ?

여론독자부 2022. 9.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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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우크라전 상황 불리하게 돌아가자
핵사용 엄포·부분동원령까지 꺼내
견제 없는 권력자의 '불안한 도박'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알 수 없어
[서울경제]

지난주에 세계 최대 핵보유국의 지도자가 핵무기 사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무기를 총동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물론 엄포일 것이다. 푸틴의 협박은 핵무기의 ‘선제 사용’을 배제한 옛 소련의 전통적 군사 독트린에 위배된다. 푸틴 치하의 러시아군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푸틴은 서방국들 역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왜 푸틴은 이 같은 연설을 한 것일까. 전황이 그에게 대단히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우크라이나군은 경이로운 연승을 거두면서 러시아군을 패주시켰다. 이에 대한 푸틴의 첫 번째 반응은 모스크바에 새로운 페리스 휠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긴장을 풀고 일상을 즐기라”고 강권했다. 며칠 후 ‘긴장 풀기’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푸틴은 황금 시간대에 TV 대국민 연설을 예고한 후 펑크를 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핵무기 사용 운운하는 연설을 했다.

부분동원령을 발령한 푸틴의 결정은 그가 우크라이나의 전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러시아는 9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단 한 번도 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이어진 러일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개막 이후 모스크바는 딱 두 차례 자국민동원령을 내렸다. 첫 번째는 1차 세계대전 전야였고 두 번째는 1941년 아돌프 히틀러와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푸틴에게 이번 부분동원령은 쓰디쓴 약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러시아 국민과 일종의 사회적 계약을 맺었다. “국민 여러분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나의 도둑 정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근사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안정되고 평화로운 국가를 만들어 주겠다”는 내용이다. 이번 동원령은 그의 첫 번째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

게다가 그는 집권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우파와 좌파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다. 푸틴의 발표 이후 최소한 1300명의 반전 시위자들이 체포됐다. 그보다 더욱 불길한 조짐은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충분한 인력과 화력, 보다 강렬한 열의 없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을 찾게 된다. 고도로 중앙집권화한 독재 국가에서 푸틴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를 비난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내린 최근 조치들은 하나같이 판돈을 올려놓았다. 핵 사용을 입에 올리고 부분적 동원령을 내리는 것만으로 모자란 듯 그는 우크라이나의 4개 지역이 곧 러시아의 일부로 편입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의 종전 협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때쯤에는 러시아법상으로 이들 4개 지역은 이미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합병이 이뤄질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분쟁 지역의 영유권 다툼이 아니라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모스크바의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는 것 외의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이 정도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저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러시아가 그들의 땅을 침범했고 도시를 파괴했으며 양민들을 고문하고 수천 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들의 국가를 되찾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리고 푸틴의 협박은 우크라이나 무장을 위한 서방의 지원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아마 푸틴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도자는 파국이 닥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엄청난 판돈이 걸린 위험한 도박을 계속하기로 작심한 듯 보인다. 설사 푸틴이 이번 전쟁에서 패한다 해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만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 러시아는 완전한 일인 독재 체제다. 정치국도 중앙위원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왕국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지상 최대의 국가가 단 한 명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묘사했던 것처럼 ‘권력의 수직선(vertical of power)’이다. 그리고 지금 그 수직선은 여느 때보다 불안정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위험한 국제 관계의 시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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