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75] 교황이 헨리8세에 '신앙 수호자' 칭호.. 왕은 21세기에도 신성한가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 9. 27. 03:05 수정 2022. 9. 2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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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이어온 유럽의 왕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나 찰스 3세는 왜 국왕인가? 이들이 왕위를 차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동의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테지만, 답은 이들이 신성하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왕국들은 1000년 넘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군주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유지해 왔다. 특히 대관식은 군주의 신성성을 확보해 주는 중요한 행사다. 1953년에 거행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당시 의례를 주관한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 제프리 피셔는 국왕의 세속 권력이 축소된 대신 영적 권력이 훨씬 더 강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영국은 하느님의 왕국에 더 가까워졌다고 선언했다.

6세기에 기독교적 즉위식 첫 등장

일반인 관점에서는 대주교가 국왕에게 ‘성 에드워드왕의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이 대관식의 클라이맥스로 보일 수 있다.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을 왼손에 쥐고, 보석 444개로 꾸민 무게 2.23㎏의 순금 왕관을 머리에 얹는 장면은 분명 멋지고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사실 국왕을 국왕답게 만들어주는 장면, 다시 말해 왕을 신성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장면은 기름 부음 의식(도유식·塗油式·anointment)이다. 대주교가 신성한 기름을 발라주는 의례를 하면 신왕은 잉글랜드의 교회를 지키고 보존하겠다고 선서한다. 이 의식의 모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국왕의 즉위식이다. 참석자들은 ‘열왕기상’의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신이시여 왕을 구하소서, 왕이시여 만수를 누리소서, 왕이시여 영생을 누리소서” 하는 내용을 노래한다. 근대에 들어서는 이 장면에서 1727년 헨델이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제사장 사독’을 연주한다. 도유식은 국왕의 권력과 권위가 하느님에게서 유래한다고 선포하는 의미다. 이를 통해 국왕은 그리스도(이 말 자체가 ‘기름을 발라 축성된 임금, 대제관’이란 뜻이다)의 대리인과 같은 거룩한 존재가 되어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리며, 또 국가와 교회의 통합성을 강화한다.

국왕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라는 의식은 멀리 켈트족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 왕은 용과 괴물이 상징하는 혼돈의 힘과 싸워 이기고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존재다. 켈트 신화에서 왕은 세상의 중심인 신성한 나무에 자리 잡고 우주의 조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치유와 예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격을 띠는 유럽의 군주를 ‘기적을 행하는 왕(thaumaturgic king)’이라 부른다.

기독교화가 진척되면서 이런 내용은 새로운 종교에 맞추어 변형되었다. 왕은 이제 신과 동격의 존재는 아니며 그보다는 신과 소통하는 일종의 사제와 같은 성격을 띤다. 이런 의미에서 국왕은 백성이 선출한 게 아니라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존재임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는 요소보다 신의 축복을 더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독교적 즉위식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6세기에 등장한다. 574년 콜럼바(Columba) 성인이 댈리어더 왕국(Dál Riata 혹은 Dalriada, 스코틀랜드 서부 지역에 위치해 있던 나라)의 아이단 막 가브란(Áedán mac Gabráin)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내린 것이 유럽 최초의 기독교적 즉위식 사례다. 이때 기독교 군주의 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 시대는 폭력이 넘쳐나는 무정부 시대이며, 영적·문화적으로 암흑기였다. 마치 깡패들이 날뛰듯 부족장이나 전사 귀족들이 멋대로 폭압적 행태를 일삼던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군주가 강력한 힘으로 통치하여 질서와 안정을 기하는 것이 훨씬 개선된 제도였다. 콜럼바 성인은 법을 통한 통치, 무엇보다 기독교적인 정의·겸손·자애의 원칙 아래 통치하는 국왕에게 기꺼이 교회의 지지를 보냈다. 반대급부로 세속 권력은 교회에 후원과 보호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교회와 국가가 서로 돕는 관계가 정립된 것이다.

중세 내내 국왕은 가톨릭교회에서 권위와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받았다. 이 점은 영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영국 국교회가 성립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강화되어 영국 국왕은 ‘신앙의 수호자’라 불렸다. 사실 이 표현은 역설적인 면이 있다. 원래 이 타이틀은 16세기에 교황이 헨리 8세에게 부여한 것이다. 가톨릭 신앙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참으로 가상하다고 하여 이런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았는데, 이후 헨리 8세는 자신의 이혼과 재혼 문제에 시비를 거는 교황청의 처사에 반발하여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왕이 기독교 신앙의 최고 수장(首長)이 되는 국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개신교 신앙의 보호자’가 되었다. 영국의 국왕이 신앙의 수호자라는 주장은 영국 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왕의 초상과 함께 ‘DG REG FD’라는 약어가 보이는데, 이는 Deo Gratia Regina Fidei Defensor, 다시 말해 ‘신의 은총을 입은 여왕, 신앙의 수호자’라는 뜻이다.

국왕이 종교적 성격을 띠는 신성한 지배자라는 관념은 근대에 들어서도 계속 강화되었다. 제임스 1세(잉글랜드 왕으로 재위 1603-1625)는 왕권신수설, 즉 국왕의 권위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신성한 힘이기 때문에 의회의 조언이나 승인 없이 자유롭게 법률이나 칙령을 제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설파했다. 이런 논리는 정치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사실 국민은 적어도 국왕이 신성하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내전 과정에서 참수당한 국왕 찰스 1세는 그리스도와 직접 비교되기도 하여, 군중이 죽은 왕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수건에 적시기 위해 몰려들었다.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을 위해 죽은 순교자로 대접받은 것이다.

헨리 8세, 이혼 문제로 가톨릭과 결별

교회가 왕실에 신비한 분위기나 존경의 태도를 강화해주는 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을 지극히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서 과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연구자들은 19세기 후반부터 왕실 의식이 변모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의식이 차분하고 사적이며 일반 대중에게 널리 광고하지는 않았으나 갈수록 더 화려하고 공적이고 사람들 이목을 끄는 방식으로 변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것도 중요한 변화의 계기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고 영국 즉위위원회가 찰스 3세의 왕위 승계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내년 봄이면 새로운 영국 군주의 대관식을 보게 될 것이다. 여전히 영국 국민 다수가 군주제 유지에 찬성한다고는 하지만 왕실에 대한 애정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왜 여전히 국왕이 존재해야 하는가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세속화한 현대사회에서 국왕이 신의 지상 대리인이며 신성한 인물이라는 주장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왕실 인사들의 적나라한 면모를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왕실의 신비로움은 다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왕세자빈과 불화 끝에 이혼하고 그러는 동안 유부녀와 연인 관계를 유지한 사실 등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보호받아 마땅한 사생활에 속하겠지만, 영국을 비롯하여 영연방 15국의 원수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야 할 ‘신성한 존재’로서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21세기에도 과연 군주는 신성한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군주제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현대적 정당성을 확보할 일이 남았다.

[중세 유럽의 왕은 그리스도와 동급?]

왕의 손길 닿으면 병이 낫는다고 믿어

국왕의 신성성을 잘 나타내는 요소는 국왕의 손길(Royal Touch)로 병을 치유한다는 믿음과 관행이다. 중세 잉글랜드와 프랑스에는 이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국왕의 손길이 닿으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은 곧 국왕이 그리스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국왕의 손길이 가장 큰 치유력을 보인다고 믿었던 병이 연주창이다. 이 병의 실체는 경부림프선결핵(tuberculous adenitis)이다. 결핵균이 침투하여 림프선이 커지고 농양이 생기며, 여기서 생긴 고름이 피부로 터져 나오는 증세를 보인다. 연주창 환자를 만져서 병을 낫게 했다는 기록을 처음 남긴 왕은 헨리 2세(재위 1154-1189)지만, 이전 기록들로 보건대 이미 정복왕 윌리엄(재위 1066-1087)이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국왕의 신성한 치유력이라는 믿음은 중세 내내 이어졌고, 종교개혁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17세기에 찰스 2세는 1660년부터 4년 동안 2만3000명의 환자를 만졌고, 다음 국왕 제임스 2세는 1685년 3월부터 12월 사이에 4422명을 만졌다. 영국에서 이 의식을 마지막으로 행했던 왕은 앤 여왕으로서 1714년의 기록이 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또한 이 행사에 성심껏 참여해서 1680년 부활절 기간에만 1600명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물론 왕이 만져주었다고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니다. 볼테르가 지적하듯, 그토록 왕의 손길이 많이 닿았던 루이 14세의 첩이 연주창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

현대인들은 물론 이런 의식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슷한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즉위 25주년 축전(silver jubilee)을 맞았던 1977년에 군중들이 엘리자베스 2세에 다가가 손을 뻗어 마치 치유를 구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국왕의 신성한 힘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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