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은행나무 고서古書
2022. 9. 26. 23:18
곽종희
오백 년 얽힌 설화 눈으로 읽는 내내
담장 밑 수북 쌓인 편년체 은행잎들
잰걸음 길손을 맞아 고서 정리 바쁘다
책장을 뒤적이다 각주를 다는 바람
쓰다 만 행간 위로 무딘 붓끝 세울 때
보름달 길을 터준다
둥근 등 환히 밝혀
백 년도 못 살면서 아등바등 사는 사이
점자로도 읽지 못해 잠시 접은 우화羽化의 꿈
어둠 속
질라래비훨훨
노랑나비 날고 있다
점자로도 읽지 못해 잠시 접은 우화羽化의 꿈
어둠 속
질라래비훨훨
노랑나비 날고 있다
인간은 고작 백 년도 못 살면서 아등바등합니다.
그에 비하면 천백 살을 훌쩍 넘은 용문사 은행나무와
수백 년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은행나무는 의연합니다.
긴 세월 동안 살아온 은행나무에 얽힌 설화를 읽습니다.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화와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문사 은행나무,
우리 마을의 애환을 긴 세월 동안 말없이 세세하게 굽어보던 은행나무,
유구한 세월을 산 그 은행나무들을 바라봅니다.
점자로도 읽지 못해 잠시 접은 우화(羽化)의 꿈이 보름달처럼 떠오릅니다.
어둠 속 둥근 등 환히 밝힌 은행나무 사이로 노랑나비가 된 나는
이제부터라도 무딘 붓끝을 세우고 훨훨 날아보렵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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