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본다..소수자들이 힘겹지 않은 세상을[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신체장애를 지닌 여성 어린이가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과학기술의 피해자 여성 청소년이
포스트휴먼 논의를 어떻게 꺼내는지
SF의 상상력을 통해 내던지는
현재를 향한 무거운 질문들
작품의 시작은 여느 동화와 비슷해 익숙함을 지나 평범하다. 은은이는 교실 맨 뒷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전학생을 빤히 쳐다보다가 전학생과 눈이 마주친다. 전학생의 이름은 민다영, 나이는 열두 살이다. 다영이는 사교적인 성격인지 같은 반 친구 나리와도 곧 반갑게 인사한다. 나리가 외모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채기라도 한 듯 머리 모양이 예쁘다며 칭찬까지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느 초등학교 교실의 평범한 풍경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바타 학교’이며, 지금껏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 은은, 다영, 나리는 모두 홀로그램 아바타인 ‘홀로바타’로 만난 사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진 어린이 독자에게는 이제 평범한 설정으로 느껴지겠다. 물론 작품이 말하는 건 이런 설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린이 SF 단편집 <내 여자 친구의 다리>(정재은·창비·2018)에 실린 동화 6편 중 3편에서는 신체 장애를 지닌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중 여성 어린이 캐릭터인 ‘아바타 학교’의 다영은 휠체어에 앉아 오직 왼손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내 여자 친구의 다리’에서 발레리나가 꿈인 아홉 살 연이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인조 다리를 갖게 된다. 이 책의 다영은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이는 2013년 보스턴 폭탄 테러로 한 다리를 잃고 ‘스마트 의족’으로 무대에 다시 선 무용가 아드리안 하슬렛데이비스를 떠올리게 한다. 작중 인물과 실존 인물이 연결되는 데다 작품에 등장하는 과학기술 또한 현재 수준에서 좀 더 나아간 단계로 그려지다 보니 SF에 느낄 법한 막연한 거리감이 줄어든다. 먼 미래가 아닌 ‘근미래’의 친숙한 공간에서 신체 장애가 있는 여성 어린이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작가는 무얼 말하려고 했을까.
‘아바타 학교’의 다영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다영이의 아바타는 세 번 연속 덩크슛에 성공하고 팔씨름 시합마다 이기면서 최고의 아바타 운동신경을 가진 학생으로 학교에 알려지고 친구들의 선망을 샀다. 그런 다영이가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했고 왼손만으로 아바타를 움직였다는 사실을 은은이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다영이가 아바타 체육대회가 아닌 ‘진짜’ 체육대회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 역시 그제서야 알게 됐을 거다. 은은이가 아바타 성형을 한 나리를 흉보자 쪽지를 차단한 이유 또한 그렇다.
다영이와 다영이 아바타 사이의 거리는 다영이 신체가 살아가는 현실과 다영이가 창조한 세계 사이의 거리다. 이 동화는 흔히 어린이 미디어 교육에서 우려하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정체성 차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바꾸는 행위는 가상세계의 작동 방식이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게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일로 긍정된다. ‘아바타 학교’에서 아바타는 본인의 신체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되지만 다영에게 그건 현실의 장애를 가상세계에서도 연장시키는 구속일 뿐이다. 그와 반대로 다영이는 자신의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아바타로 이룬다. 실존 인물인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서도 이미 구현된 그 세계는 과학기술로 가능한 세계였다.
‘내 여자 친구의 다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연이는 똑바로 걷기조차 힘든 인조 다리에 적응하며 발레 동작을 하나씩 완성해나가다 6년 후 결국 최고의 발레단에 입단하는 관문인 콩쿠르에 출전한다. 사고 직후, 인조 다리로도 발레가 가능한지 묻는 연이의 질문에 생체로봇공학자 노서연이 “너에게 맞는 인조 다리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발레를 하고 싶으면 네가 해야겠지”(<내 여자 친구의 다리> 37면)라고 냉정히 답했듯 콩쿠르 출전은 연이의 노력이 이루어낸 일이었다. 하지만 연이에게 돌아온 건 인조 다리 발레리나는 가짜라는 여론과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노력과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내 여자 친구의 다리> 45면)이라는 심사평이었다.
이 동화는 과학기술로 장애가 극복되는 서사에서 나아가 장애 자체를 질문한다. 비록 콩쿠르의 관객과 심사위원은 발레리나의 뒤틀린 발가락만을 인간다움으로,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을 인간 신체 바깥의 이물질로 규정했지만 독자가 연이를 응원하며 인간 신체의 경계가 변화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포스트휴먼 논의가 제기하듯 기계와의 결합으로 확장되는 인간 신체의 경계와 그로써 새롭게 구성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은 또한 미래의 질문만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이 된다. 현재 장애로 규정되는 정체성이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한 미래에서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면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현재의 경계는 의문에 부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모든 경계와 그 경계로 규정되는 소수자성 역시 돌아보게 한다. 신체 장애를 지닌 여성 어린이 캐릭터는 그 질문이 겨누는 소수자성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는 존재이다.
청소년소설 <원통 안의 소녀>(김초엽·창비·2019)에서도 여성 청소년 캐릭터에서 포스트휴먼 논의와 소수자성이 연결된다. 지유는 대기 중 흩어져 있는 나노봇에 이상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극소수 중 한 명으로, ‘프로텍터’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원통에 들어가 공기와 차단되어야만 외출이 가능하다. 지유가 소수자로 감각하는 자신과 세계 사이의 ‘벽’은 단지 상징적 언어가 아니라 플라스틱 원통이라는 물리적 실재로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지유를 원통 안에 가둔 원인인 나노봇은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을 해결하려는 과정 중 발생한 사고로 공기에 분사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유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연구원들이 자랑스레 인터뷰하는 방송을 병원에서 호흡 보조기를 단 채로 보며 지유는 “만약 그때 저 사람들이 실수를 안 했다면, 나는 지금 환자가 아니겠지”(<원통 안의 소녀> 22면)라고 말한다. 지유의 독백은 그가 다름 아닌 과학기술의 피해자라는 사실,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일의 우연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지유는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과 같은 과학기술 사회의 피해자인 복제인간 노아와 연결되는 가운데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낸다. 노아는 장기 기증을 위한 의료용 클론이지만 생산 과정상 오류로 뇌가 발달하는 바람에 불량 관리 규정대로 인큐베이터에 결박되어 삶이 없는 생명만 유지되던 상태였다. 노아가 “너처럼 원통 안에 갇힌 진짜 나를 생각하게 됐어”(<원통 안의 소녀> 65면)라고 자각하자 지유는 노아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지유가 ‘프로텍터’ 덕분에 나노봇에 반응하는 인간 생체로 감지되지 않아 보안을 뚫는 장면은 오직 소수자의 정체성으로 현실을 전복하며 이루어낸 승리를 통쾌하게 그린다. ‘아바타 학교’ ‘내 여자 친구의 다리’가 포스트휴먼의 상상력으로 소수자성을 질문했다면, <원통 안의 소녀>는 더 나아가 소수자의 연대와 승리를 전망한다.
김초엽의 첫 SF 작품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2019)과 장편 SF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 북스·2021)에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데 그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2021)의 수록작 ‘마리의 춤’에서는 가장 막강한 여성 청소년 캐릭터가 등장한다. 마리는 테러리스트다. 흔히 상상하는 폭탄 테러리스트와 달리 시지각 이상증을 일시적으로 일으키는 전환 물질을 자신의 무용 공연에서 관객에게 분사한다. ‘모그’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시지각 이상증을 지닌 마리는 자신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결핍이 아닌 그저 또 다른 방식 하나로 타인들이 직접 겪어보길 원해서였다. ‘모그’ 증후군은 해양오염 해결에 사용된 테트라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어린이들에게 발생한 피해이지만 마리를 비롯한 일부 ‘모그’는 이를 진화 혹은 진보로 받아들인다. 마리의 테러는 지탄받고, 피해자로 동정받던 ‘모그’에 대한 증오범죄까지 일어나는 한편 치료를 받지 않고 계속 ‘모그’로 살아가길 선택하는 이들도 나온다. 일시적으로 ‘모그’가 되어보니 그제야 ‘모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도 말한다. 테러라는 폭력적 사건의 재현은 마리가 ‘모그’로 경험해온 폭력을 동일한 무게로 돌아보게 한다.
“중학생 때 합창단에 동원됐거든요. 모그 교육원을 홍보하는 자선 행사에서 우리에게 교육을 하라고 했죠. 기분이 나빴지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연습을 대충 했어요. 보란 듯이 가사도 다 틀리고 엉망진창으로 무대를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반응이 어땠는지 알아요?”(중략)
“자선 행사에 온 사람들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중략)
“관객들이 훌쩍이고, 달려 나와 우리를 껴안았어요. 강당의 공기가 습해지는 것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졌고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정말 누가 들어도 엉망진창인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 살은 어린 나이지만 때에 따라 탁월함을 기대받기도 하는 나이잖아요. 그날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방금 떠나온 세계> 78~79면
‘내 여자 친구의 다리’와 <원통 안의 소녀>는 포스트휴먼 논의를 바탕으로 인간 신체의 경계를 새롭게 상상하며 현재 경계 지어진 신체 장애와 소수자성을 되돌아보게 했다. <원통 안의 소녀>에서 성공한 탈출은 ‘마리의 꿈’에서는 더욱 과격해지며 소수자성을 결핍이 아닌 포스트휴먼의 진화로까지 말하기에 이른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 캐릭터가 지닌 이중, 삼중의 소수자성은 이렇게 SF의 포스트휴먼 논의와 만나고 있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SF적인 질문과 반성이 여성 청소년 캐릭터를 통해 재현된다. 천선란의 <나인>(창비·2021)에서 식물과, <천 개의 파랑>(허블·2020)에서 동물과 교감하거나 연대하며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모색하는 캐릭터 또한 여성 청소년이다. SF에서 새롭게 탄생한 여성 어린이, 청소년 캐릭터가 현재의 경계를 의문하고 절연하는 미래에의 상상력을 열어보이고 있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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