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치당' 창당 45살 멜로니,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로
무솔리니 이후 극우정당 첫 집권
“우파든 좌파든 상관없다. 이탈리아인들이 선출한 정부가 5년간 지속되고 정책을 완수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저 멜로니 대표가 능력 있어 보여 좋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인근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일하는 52살 카테리나 바차니는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18일 <에이피>(AP) 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며 잦은 내각 붕괴를 겪는 이탈리아 정치권에 불만을 터뜨리며, 조르자 멜로니(45) 대표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칠리아 출신인 마리아 타스카(27)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25일 영국 <가디언>에 “멜로니 대표가 이끄는 우파 연합이 여론조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몹시 걱정된다. 시민들의 권리에 관해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탈리아가)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마리오 드라기 내각이 7월 말 붕괴하며 25일 치러진 이번 조기 총선 결과에 대해 많은 이탈리아인이 여러 기대와 우려를 쏟아냈다.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렸던 멜로니 대표의 ‘이탈리아 형제들’(Fdl)의 승리였다. 26일 전체 투표의 99% 이상 개표된 가운데 상·하원에서 각각 26.1%를 득표해 제1당으로 올랐고, 우파 연합 전체의 득표율도 상·하원 각각 40% 이상이었다. 이로써 멜로니 대표가 이탈리아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로 사실상 확정됐다. 2018년 총선에서 겨우 4.3%를 얻었던 극우 정당이 이탈리아 정치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국제사회는 이런 변화를 위태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네번째, 유럽연합(EU)의 세번째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에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 이후 처음 극우 정당이 집권하게 됐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24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우파적인 정부가 들어설 이탈리아에서 국민들은 엄청난 변화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선거 기간 동안 이민자에 강경한 정책과 유럽연합과 거리를 두는 기조로 표를 얻었다. 또 전통적 가족주의를 중시하면서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소극적 정책을 펼 것을 예고했다.
선거를 승리로 이끈 멜로니 대표는 1977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15살이던 1992년 네오파시스트(신나치주의)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운동’(MSI)에 가입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유년 시절을 보내고 정치 이력을 쌓아간 지역은 로마의 대표적인 노동 계층 거주지인 ‘가르바텔라’다. 노동자가 모인 지역답게 전통적으로 좌파가 우세하다. 지난해에도 중도 좌파인 민주당 정치인이 시장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멜로니 대표를 강하고, 현실적이며, 단호한 인물로 기억했다. 지난 16일 옛 정당 사무실 앞에서 시민 프란체스카는 <가디언>에 “멜로니는 자신의 길을 고수하고 결코 주저하지 않는 매우 지적이고 결단력 있는 소녀였다”고 말했다.
멜로니 대표는 홀로된 어머니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싱글맘의 자녀였지만, 2012년 역설적이게도 이탈리아 민족주의와 전통적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이탈리아 형제들’을 공동 창당했다. 이 정당의 강령은 ‘하느님, 가족, 조국’이다.
그는 유력 총리 후보로 떠오르기 전부터 각종 연설에서 동성혼 반대, 동성혼 육아 반대 등을 주장했다. 멜로니가 이탈리아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도 이런 ‘과격한’ 연설을 통해서였다. 그는 2019년 한 연설에서 “나는 조르자, 나는 여성이고, 나는 어머니고, 나는 이탈리아인이고,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외쳤다. 대중은 독특한 이탈리아어 운율이 섞인 소개에 열광했다. 찬반 양쪽 모두에서 경쟁적으로 패러디를 만들어 퍼 날랐다.
멜로니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유럽에 덜 속하면서, 더 나은 유럽이 되자’란 문구를 내걸었다. 전임 드라기 내각이 내세워온 유럽연합 중시 노선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또 지중해를 건너오는 아프리카·중동 이민자들에게 높은 벽을 쌓는 강경한 정책을 약속했다.
하지만 드라기 내각이 붕괴되며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오르자 그동안 쏟아낸 과격한 주장을 접고 중도층에 호소할 수 있는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파시즘과 선을 그으며, 자신을 ‘극우’가 아닌 ‘보수’로 불러달라고도 했다. 지난 13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선 ‘민족주의 우파’, ‘극우’, ‘보수’ 가운데 ‘보수’가 자신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우리 가치관이 보수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자유, 기업의 경제활동, 가족 중심주의, 통제되지 않는 이민으로부터의 보호, 이탈리아의 국가 정체성 바로 세우기 등은 우리가 선점하는 이슈이다.”
이는 왜 이탈리아인들이 45살의 젊은 여성 우파에게 표를 던졌는지 설명해준다.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치솟은 물가와 침체된 경제 사정으로 이탈리아는 큰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전임 드라기 내각은 유럽연합의 연대를 중시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며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왔던 드라기 내각이 붕괴했다.
멜로니 대표의 ‘이탈리아 형제들’은 거국내각이었던 드라기 내각에 합류하지 않은 유일한 주요 정당이었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수시로 입장을 바꾸고 이념적 유턴을 하는 이탈리아 정치 지형에서 조국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멜로니의 기조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지난달 16일 이탈리아에서 멜로니 대표가 총리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이유에 대해 “그의 인기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라고 분석했다. 젊은 나이와 여성이란 점도 유권자의 호감을 사는 데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탈리아엔 무려 세번이나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6) 등 연로한 정치인이 여전히 은퇴하지 않고 있다. 영국의 정치 컨설턴트 볼팡고 피콜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되는 에너지난, 빙하가 녹는 급격한 기후변화까지 각종 위기를 겪는 이탈리아에선 모두가 변화와 새 얼굴을 열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이탈리아를 이끌게 될 멜로니 대표의 핵심 과제는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파 연합은 선거에서 생필품과 에너지 비용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 등 폭넓은 감세를 제안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정부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멜로니 대표와 곧 협의에 나선다. 새 의회는 새달 13일 소집된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3만573번 거짓말’ 트럼프가 롤모델? [아침햇발]
- 600년간 물에 잠겼던 불상이 바깥으로…가뭄이 바꾼 세계
- “지상파 3사가 다 바이든 자막 내보냈는데... 왜 MBC만?”
- 이준석, ‘비속어 논란’ 겨냥…“물가 경보음 들리느냐가 더 중요”
- 복지장관 후보자, 억대 연봉에 연금 받으며 건보 한푼도 안 내
- 유독성 ‘버섯구름 연기’ 30초면 지하 가득…아울렛 참사 키웠다
- 기시다는 한국에 힘 뺄 여유 없다…총리 자리마저 위태
- 하태경 “대통령이 시인도 부인도 않는 상황, 이해하기 힘들다”
- 아들 이름 목놓아 부르다 주저앉았다 “큰 회사 취업 좋아했더니…”
- 나사가 던진 다트, 소행성 명중…인류 첫 지구 방어 실험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