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판다] 1900년 · 9999년생? 수상한 고액 후원자 명단 (풀영상)
<앵커>
SBS 탐사보도 끝까지판다팀이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광역단체장에 도전한 여야 후보자 34명의 후원금 내역을 분석했습니다. 300만 원 이상 고액 후원자는 이름, 나이, 직업 같은 인적 사항을 선관위에 제출해야 하지만, 일부 후보자의 경우 고액 후원자 정보가 절반 이상 누락돼 있었습니다.
먼저 고정현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고정현 기자>
곳곳에 생년월일이 1900년 1월 1일이라고 기재된 후원자 이름이 보입니다.
직업은 물론, 주소와 전화번호도 없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재된 게 고액 후원자 61명 중 35명, 모두 1억 7천500만 원을 누가 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측이 선관위에 제출한 자료입니다.
민주당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의 고액 후원자 명단도 이상합니다.
34명의 고액 후원자 가운데 20명이 9999년 99월 99일생.
역시 이름만 있고 주소와 직업, 연락처는 공란입니다.
누가 냈는지 알 수 없는 돈이 1억 원입니다.
지난 6·1 지방선거 광역단체 여야 후보자 34명 가운데 9명에게서 이런 정체불명의 고액 후원자가 발견됩니다.
김은혜, 이광재 후보를 제외하면 보통 1~2명, 제일 많은 경우가 8명이었습니다.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 : (과거에 한두 명 정도 누락된 거는 있었죠?) 있었죠. 네네, 계속 있었죠. (왕창 누락된 경우는 있었나요?) 저도 본 적은 없기는 합니다.]
정치자금을 매개로 한 각종 비리를 막기 위해, 정치자금법은 300만 원 이상 고액 후원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직업, 전화번호와 돈 낸 날짜를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놓고 법을 지키지 않아 문제 있는 정치자금의 감시와 적발이 불가능합니다.
후원금 회계 보고를 허위로 하는 경우 등에는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이런 하나마나한 보고에 대해서는 선관위는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강원도 선거관리위원회 : 일단 기명으로 들어온 거기 때문에 현재는 불법으로 보기가 좀 어렵다. 혹시라도 이런 내부 사정을 좀 잘 아시는 분이 신고, 제보를 한다고 하면….]
김 수석 측은 "고의 누락은 아니며, 정보 제공을 거부한 후원자가 많다"고 답했고, 이 총장 측은 "소액 후원자까지 8천 명이라 명단 작성이 늦어지고 있다"며 "계속 명단을 제출할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지방선거 회계처리 마감일은 7월 1일로, 이미 석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한 국회의원 회계 책임자는 "후원자가 개인정보 제공을 끝끝내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도, "1~2명이 아닌 수십 명의 정보 누락은 의심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 이해관계가 연루된 사람들이 정치자금을 내고 그걸로 인해, 정치가 어떻게 보면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거든요. 기본을 안 지키는 정치자금은 당연히 환수 조치를 한다든지.]
(영상취재 : 하 륭, VJ : 김준호, 영상편집 : 박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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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00만 원 이상은 고액 후원자로 분류되고, 최대 한도는 500만 원입니다. 그런데 쌍방울과 성정 그룹 임원들이 특정 후보자에게 500만 원씩 몰아서 낸 게 확인됐습니다. 정치 자금을 쪼개서 보낸 정황이 포착된 겁니다.
이어서 정반석 기자입니다.
<정반석 기자>
지난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의 고액 후원자 명단입니다.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과 같은 계열 광림의 방 모 대표, 아이오케이컴퍼니 장 모 대표가 500만 원씩 냈습니다.
돈을 낸 날짜는 3월 11일로 같습니다.
김성태 회장과 사업적으로 긴밀한 것으로 알려진 배상윤 필룩스그룹 회장도 하루 앞서 5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올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형준 후보를 고액 후원한 명단에 김성태라는 이름이 또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생년월일과 주소, 직업이 공란입니다.
5월 19일 500만 원을 낸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500만 원을 낸 '회사원' 박 모 씨는, 쌍방울 전 이사이자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착한이인베스트의 이사 박 모 씨와 생년월일이 같습니다.
[박 모 이사 서류상 주소 이웃 주민 : 김성태 회장 와이프의 동생(집)이요. 박OO란 분은 여기 없어요.]
검찰 수사를 피해 5월 말 해외로 나간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박 모 이사에 대해 쌍방울 측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쌍방울 관계자 : (박OO 이사?) 아니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박형준 시장 측은 "김성태 전 회장과 과거에 스쳐가며 본 듯한 사이"라며 "후원한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고, 왜 후원했는지는 모른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계열사 임원들이 쪼개기 후원을 한 정황은 6·1 지방선거 때 김태흠 국민의힘 충남지사 후보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주식회사 성정의 형남순 회장과 계열사인 백제컨트리클럽 정 모 이사, 형 회장의 사위이자 이스타항공의 이사로 등재된 최 모 변호사가 5월 17일 500만 원씩 냈습니다.
하루 뒤에는 형 회장의 아들인 형 모 성정 대표가 역시 5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직업은 모두 '자영업'이나 '회사원'으로 표기했습니다.
[형남순/성정 회장 : (나눠서 내자, 이렇게 비춰질 수 있어서….) 그건 오해이시고. 서로들 그분들이 다 각자가 그분을 좀 도와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성정은 충남 부여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로, 계열사인 대국건설산업은 충남개발공사가 발주한 주택공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형남순/성정 회장 : 이게 2년 전에 발주 한 공사입니다. 그 공사가 지금 도지사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경유착 등을 막기 위해 법인이나 단체의 기부를 금지하고 후원 한도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이를 회피하려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적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진만/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외국과 같이 기부 내용들이 명확하게 기재되고, 언제든지 접근 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제공이 되어야 고액 기부가 가능해지고 쪼개기 후원이 개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하 륭, 영상편집 : 박춘배, VJ : 김준호, CG : 조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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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치 후원금 분석한 고정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고액 후원자 명단 부실 제출, 문제는?
[고정현 기자 : 정치자금법의 목적, 정치자금법을 매개로 한 부정과 비리를 방지하자는 겁니다. 앞선 리포트에서 보셨듯이 저희도 생년월일이라도 나왔기 때문에 어느 기업 임원인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적어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면 쪼개기 후원, 차명 기부 등이 만연해져서 결국 정치자금법이 무력화될 거다, 이렇게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Q. 선진국 등 해외 사례는?
[고정현 기자 : 주요국 상당수가 공개 범위를 더 넓혀서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연간 5만 엔, 우리나라 돈으로 50만 원 이상 정치 자금을 후원하면 신상 정보를 적어내야 합니다. 영국은 연간 1천500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230만 원이죠. 미국은 연간 200달러, 약 28만 원 이상이 넘으면 신상 정보 공개 대상이 됩니다. 더 중요한 거는 공개의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정보 공개를 통해서만 고액 정치 후원자 명단을 받아볼 수 있고요, 미국과 영국은 인터넷에서 상시적으로 고액 후원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걸 감시하는 시민단체 활동도 더 활발해질 수 있는 겁니다.]
Q. 향후 제도 개선 방안은?
[고정현 기자 : 금융기관이 후원회나 선관위 측에 돈을 낸 정보를 내는 걸 의무화해야 한다 이런 목소리도 있고요, 출처가 불명확한 후원금 같은 경우에는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어떻게 해서든 법을 바꿔야 되는 건데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다소 의문인 상태입니다.]
탐사보도팀pan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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