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 윤석열 정권, 미국은 겁내고 국민은 겁주나

김민아 논설실장 2022. 9. 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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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순방에서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 일성은 뜻밖이었다. 윤 대통령은 26일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전 세계의 두세 개 초강대국을 제외하고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자국 능력만으로 지킬 수 있는 국가는 없다”면서 한 말이다. “진상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도 했다.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윤 대통령 말을 종합하면 비속어 논란은 사실과 다르고, 한·미 동맹을 훼손하며, 관련 보도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민아 논설실장

잘 모르는 독자도 계실 수 있으니 전말을 요약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회의장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48초간 환담했다. 이후 회의장에서 나오던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 XX’는 미 의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실은 영상 공개 후 13시간이 지나 해명을 내놓았다. ‘이 XX’는 한국 국회를 지칭한 것이며,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했다는 취지였다. 논란은 더 커졌다. 한국 국회의원은 폄훼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소셜미디어에선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벚꽃 엔딩’의 가사 ‘봄바람 휘날리며’가 ‘봄바람 휘바이든’으로, 영화 제목 ‘태극기 휘날리며’가 ‘태극기 휘바이든’으로 패러디됐다.

모두가 대통령의 첫 출근길을 주목했다. 나는 윤 대통령이 당시 발언 취지를 설명하거나, 껄끄러우면 직답을 피하리라 생각했다. 틀렸다. 대통령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답을 피하지 않았다.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상은 발언 당사자가 가장 잘 알 텐데, 스스로 밝히는 대신 타깃을 언론으로 돌렸다. 국민의힘도 발 맞춰 영상을 처음 공개한 MBC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항의 방문과 경위 해명 요구 등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김행 비대위원은 “수사의뢰”를 거론했다.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MBC 사장과 편집자·담당 기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전날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가짜뉴스”를 언급한 게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팩트체크를 해보자. ① 윤 대통령은 비속어를 ‘발화’했다. 이 부분은 김은혜 홍보수석도 인정했다. ② ‘이 XX’는 미 의회 의원 또는 (적어도) 한국 국회의원을 지칭한다. 앞에 ‘국회에서’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③ 윤 대통령이 발언한 곳은 각국 정상이 모인 국제회의장 안이었고, 바로 옆에 사적 지인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이 있었다. 백보 양보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 했다고 치자. ①②③만으로도 대통령은 사과해야 마땅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화내는 건 겁나지만, 한국 국회와 국민은 분노하든 말든 상관없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도 잘못 끼우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솔직하게 시인하고 논란을 매듭지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①②③이 부적절했다는 점조차 인정하지 않은 채 ‘사적 발언’ ‘혼잣말’로 덮으려다 사태를 키웠다. 스스로 퇴로를 끊은 셈이다.

이제 어찌할 텐가. 이명박 정권이 <PD수첩>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수사했듯 MBC를 수사하고 ‘휘바이든’ 패러디를 퍼뜨린 소셜미디어 이용자를 잡아들일 건가. 윤 대통령이 몰입해온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통치 방식대로라면 이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시민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기대할지 모른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야기했다. “만약 (사랑과 두려움) 둘 중에서 어느 하나가 결여될 수밖에 없다면, (군주는)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도 했다. “증오의 대상이 되거나 경멸받는 것을 피하고, 인민이 그에게 만족하도록 한다면, 그 군주는 스스로를 충분히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정치철학자이자 마키아벨리 연구자인 곽준혁은 저서 <지배와 비지배>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음모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면, 다수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인민을 적대시하면 군주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국민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지도자는 없다. 500년 전에도, 지금도.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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