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 기후정의행진.."적게 소비·욕망하는 삶으로 전환이 답"

한겨레 2022. 9.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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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 태평로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왜냐면]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 24일 서울시청 앞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기후정의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3만5천여명이 참여했다. 젊은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대 시민이 참여했고 가족 참여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의외로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발언과 구호가 자주 터져 나왔다. 그동안 좌파나 노동운동과는 거리를 두었던 한국 환경운동 흐름에 비춰보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지금 기후위기는 티핑포인트(급변점)를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표본조사한 결과, 38%의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에만 이산화탄소 36.3기가톤(Gt)이 배출됐다고 발표했다. 1만년 동안 4도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00년 동안 1도 상승했다. 시속 4㎞ 속도로 걷던 인간이 시속 100㎞ 속도로 달리고 있는 셈이다. 25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역대급 태풍, 홍수, 가뭄, 폭설, 폭염, 빙하의 소멸이 일상화하고 있다. “1970년에서 2019년 사이에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해 총 206만명이 숨졌고, 3조640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입었다.”(세계기상기구 ‘2021 보고서’) 이뿐만이 아니라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는 팬데믹, 해수면 상승, 식량생산 감소, 노동조건의 악화 등을 부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5차 보고서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제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이 순 영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6차 보고서에서는 2040년 안에 이런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9년 대비 43%까지 감축할 것을 주문했다.

왜 인류 문명의 파국을 말할 지경까지 놓이게 됐을까. 그 원인은 산업화, 도시화, 인구 증가, 인간중심주의, 제국의 수탈과 불평등한 세계체제, 인간의 탐욕이지만,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다. 이 체제가 야기한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심화한다. “저소득 국가는 연간 1인당 약 2톤의 물자를 소비하는 데 비해 고소득 국가 국민은 평균 28톤을 소비한다. 인도인이 1인당 1.9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미국인은 16톤을 배출한다. 국가별 공정분담량을 초과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2%가 유럽과 미국 등 북반구 국가의 몫이고, 남반구 국가에는 8% 책임만 있다. 반면에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비용은 남반부가 82%를 부담했으며, 사망자의 98%가 남반구에서 발생했다.”(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 한마디로 말해 상층의 부자와 부자 나라들이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있지만, 그 비용과 피해는 가난한 나라와 하층계급이 받고 있다.

탈성장, 탈자본, 탈제국 없이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탈성장 없이 탄소배출과 환경오염은 줄어들지 않는데 자본주의 체제는 확대재생산의 원리로 작동하기에 매년 세계 경제는 3~4% 성장한다. 탈자본 없이 탈성장은 불가능하다. 자본이 증식하면 할수록 자연을 기계나 상품으로 전화하기에 자연은 착취당한다. 자연 자체는 물질대사를 하며 순환하는 생태계인데, 이 순환이 파괴돼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과잉 생산과 소비가 이 순환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는 자연과 인간의 가치를 배제하면서 이를 교환가치로 대체해 물화(物化)와 물신화, 소외를 심화한다. 개인이 신과 인간보다 돈을 더 섬기면서 서로 경쟁하고 이기심과 욕망을 증식하며 더 많이 소비하도록 조장한다. 이 체제는 이를 견제해야 할 이성마저 도구화하면서 모든 시스템과 과학기술을 계산이 가능한 목적에 종속시킨다. 근본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생산관계에 있다. 한 예로, 세계 식량생산량은 80억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인데, 8억여명이 기아에 허덕인다. 무엇보다 이 체제는 탄소세와 같은 좋은 대안조차 상품화해 무력화하기에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이제 일상의 차원에서는 타자와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탐욕을 절제하는 데서 환희심을 느끼는 삶, 곧 적게 소비하고 적게 욕망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되, 이에서 그치지 말고 자본주의를 넘어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향해 무엇이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에게 22세기는 디스토피아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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