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송나라 역사에서 얻는 교훈

박영서 입력 2022. 9.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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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960~1279)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세워진 왕조였다.

이런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신하들의 권력이 가장 강해 '중국식 민주주의'가 꽃피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나라는 고도의 문명국가였지만, 돈과 타협으로 국방력을 대신했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

책은 송나라 황제 18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면서 이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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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 강정만 지음 / 주류성 펴냄

송나라(960~1279)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세워진 왕조였다. 송 태조 조광윤은 중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선양(禪讓) 형식을 밟아 송을 건국했고, 문치주의 전통과 군주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이런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신하들의 권력이 가장 강해 '중국식 민주주의'가 꽃피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도 눈부셨고, 학술과 문학은 찬란했다.

송나라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고 최첨단 무기인 화포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대 황제 송태종 조광의의 북벌정책이 실패한 이후 멸망할 때까지 300여년 동안 거란, 서하, 금나라, 몽골(원나라) 등 북방 이민족에게 온갖 치욕과 고통을 당했다. 송나라는 고도의 문명국가였지만, 돈과 타협으로 국방력을 대신했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

책은 송나라 황제 18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면서 이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책은 대략 4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국방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는 망할 수 있다는 엄중한 교훈이다. 둘째, 국가는 거시적 의미의 '문'(文)과 '무'(武)의 동등한 가치 체계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송나라는 문에 치우친 국정 운영을 했기 때문에 무력이 강한 국가에게 먹힌 것이다. 이른바 '문무겸전'(文武兼全)은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셋째, 외교는 결코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송나라의 철천지원수는 금나라였다. 원나라는 송나라에게 연합군을 조직하여 금나라를 멸망시키자고 제안했다. 당시 남송 정부는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오로지 금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제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늑대를 쫓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끼어있는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이다. 넷째, 당파싸움은 망국의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당파싸움은 오랜 세월 동안 국론을 분열시켜 북송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이 역시 당리당략에 얽매인 정치인들이 수두룩한 우리 정치 현실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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