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노동개혁

한겨레 입력 2022. 9. 26. 18:55 수정 2022. 9.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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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면 65살 이상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20.6%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노인들. 강창광 선임기자

[숨&결] 한지원 | 연구활동가·작가

인구 고령화로 사라지는 것들이 주변에 많다. 추석에 모인 내 일가친척들은 더는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차례상을 받을 조상은 늘어나는데 차례상을 차릴 후손은 도리어 줄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올해 결단을 내렸다. 최근 명절 때마다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차례를 없앴다”는 인터뷰들이다. 유교전통 전승이 목표인 성균관은 후손들이 간소하게라도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라는 혁명적(?) ‘차례상 표준안’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차례상 음식 가짓수 이전에 절을 할 후손이 사라지고 있다.

노동조합도 고령화 탓에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일반기계를 만드는 한 중견 제조업체의 노동조합은 5년 내 조합원 80%가 퇴직할 예정이다. 20년 동안 신규채용이 없었다. 외주생산을 확대했으며, 바쁠 때는 계약직을 썼다. 사장은 최근 공장을 국외로 옮길 계획을 세운 것 같다. 그 노조는 지역의 모범이었다. 고용을 지켰고 임금은 꾸준하게 인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조합원 평균 연령은 57살이나 되었고, 조합원들의 생물학적 이유로 문을 닫을 처지에 몰렸다. 노조 간부는 나에게 노조를 살릴 방법에 관해 물었다.

나는 “정년이 한참 남은 10여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에 와서 해결책을 찾긴 어렵다”라고 말해야 했다. 몇십년간 없었던 신규채용을 하려면, 노조가 강력한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하거나 해외 이전이 필요 없을 만큼 현재의 임금과 복지수준을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정년이 몇년 안 남은 조합원들에게 이런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합원 정년퇴직으로 노조가 문을 닫는 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령화는 한국 사회 최고 난제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60년대쯤에는 노년부양비(15~64살 생산가능인구 대비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중)가 100%를 넘어선다. 일해서 세금 내는 사람보다 퇴직해서 연금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사회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다.

고령화가 이상한 건 아니다. 소득이 증가하면 출산율이 하락하고 기대수명이 상승한다. 선진국 대부분이 이런 경로를 걸었다. 다만, 문제는 속도다. 고령화가 적절한 속도로 진행되다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고령화는 속도에서나 상한선에서나 한계가 없다. 합계출산율은 0.8로 세계 꼴찌다.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2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가족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가는 최전선인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원인은 분명해 보인다. 일자리 양극화가 심하다 보니 청년들이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하거나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통계를 보면, 경제위기 같은 재난 상태가 아닌데 청년고용률이 한국처럼 낮은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의 노동시장 내 지위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2022년 한국 경제 보고서’는 한국의 유자녀 여성은 유자녀 남성보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가능성이 3배 높다고 분석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증가한 여성 일자리 수의 90% 가까이가 주 36시간 미만 일자리였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 노동시장은 청년 또는 여성에게 ‘헬조선’이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극악하다. 청년세대가 인구 재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미래노동시장위원회’라는 전문가기구도 만들었다. 미래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고령화다. 고령화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다른 개혁은 하나 마나다. 인구학적 위기는 여러 문화와 제도를 소멸시킨다. 때를 놓치면 개혁의 대상 자체가 사라진다. 청년 또는 여성에게 희망을 주는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은폐하려는 공허한 개혁 레토릭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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