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03> 일본서 처음 열린 신한동해오픈] 곰탕에 다보탑, 미루나무..고향 한국 담은 고마컨트리클럽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신한금융그룹은 자사가 주최하는 골프대회인 ‘제38회 신한동해오픈(총상금 14억원, 우승상금 2억5200만원)’을 9월 8일부터 나흘간 일본 나라현 고마컨트리클럽에서 열었다. 이 대회는 2019년 대회 국제화를 위해 코리안투어(KPGA), 아시안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세 개 투어 공동 주관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최근 2년간 KPGA가 단독 주관해 국내에서 개최하다 확산세가 진정되고 일본 입국 절차가 완화되면서 올해 다시 세 개 투어가 공동 주관하게 됐다.
서른여덟 번 대회를 열면서 해외에서 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 그것도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이곳을 선택했을까? 신한동해오픈의 뿌리가 바로 고마컨트리클럽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애초 고마컨트리클럽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2020년 이곳에서 대회를 열 계획이었던 게 코로나19로 2년 늦춰져, 마침내 열린 것이다.
대회 마지막 날 주최 측은 대회 관계자들에게 점심으로 한국 곰탕을 대접했다. 일본 사람들은 ‘오이시이(맛있다)’란 감탄사를 연발했고, 아예 한국어로 ‘맛있어요’라고 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곰탕을 비롯해 불고기, 냉면이 이 골프장의 대표 음식이다. 이 골프장은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골프장 맛집으로 통한다. 고마골프장은 오사카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거리인 나라현에 있다. 아직 주변 개발이 활성화하지 않은 일본의 전형적인 농촌 시골 마을이다. 일본에 있는 골프장인데 입구에 경주 불국사에서 보던 다보탑 모형이 서 있다. 코스 그늘집은 한국 전통의 팔각정 스타일로 지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한국 스타일 골프장이다. 고마컨트리클럽은 식민 시대를 거쳐 일본에서 사업을 일군 재일 동포 1~2세대의 애환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 사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일본 골프장들은 재일 동포에게 회원권을 팔지 않는 등 차별했다.
재일 동포 사업가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은 “재일 동포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일본 골프장 회원이 되고 골프장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을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재일 동포들이 돈을 모아 1980년 고마컨트리클럽을 세우면서 일본 명문 클럽보다 더 좋은 코스, 고향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를 만들기로 했다.
남아공의 레전드 골퍼 게리 플레이어가 설계한 이 골프장은 2002년 일본 PGA챔피언십과 2019년 JGTO간사이오픈을 열었다. 일본 내 100대 골프장으로 꼽히는 토너먼트 코스다. ‘낚시꾼 스윙’으로 일본에서도 많은 팬으로부터 사랑받는 최호성은 “여기서 라운드를 하면 일본인데도 꼭 한국 같다. 코스 관리 상태는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주방장은 오키나와 출신 일본인인데 한국에서 요리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1993년부터 오랜 기간 골프장 지배인을 지낸 다이라 고키 서일본개발주식회사 총지배인은 “클럽하우스 메뉴가 워낙 인기 좋아 먼저 식사 예약을 받고 그다음에 골프 코스 예약을 받았다”고 했다. 초기 회원들은 대부분 재일 동포였는데 지금은 일본인도 40% 정도 된다고 한다. 회원 구성은 바뀌어도 골프장 메뉴는 여전히 최고 인기라고 한다.
고마컨트리클럽을 만든 주역인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초대회장은 고향의 바람 소리를 느끼고 싶다며 골프장에 미루나무를 심었다. 초창기 골프장 로고 문양은 무궁화였다.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은 “한시도 모국을 잊지 않은 재일 동포의 땀과 눈물이 서린 이 골프장에서 신한동해오픈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골프 대회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 경제의 거품 시대가 깨지면서 많은 골프장이 미국 등 해외 자본에 넘어갔지만, 이 골프장은 재일 동포의 손에서 또 다른 재일 동포가 지켰다. 현재 골프장을 운영하는 히라카와 코퍼레이션(平川商社)의 오너도 재일 동포 히라카와 하루키다. 처음 골프장을 만든 주역 중 한 명의 후손이다.
그는 “고마컨트리클럽은 나라, 미에, 교토 등 세 개 현에 걸쳐 있는데, 근처에 고려인 정착촌이 있어 한국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2013년 발간된 ‘아름다운 일본의 골프 코스’는 “고마를 한자로 쓰면 고려이며 1000여 년 전 고구려 패망 후 도래인이 정착한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일본서기’에는 7세기 중반 표류한 고구려인이 일본 교토 남부에 정착해 ‘가미고마무라(上高(句)麗村)’와 ‘시모고마무라(下高(句)麗村)’라는 마을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1980년 고마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에 모인 재일 동포들은 모국에 골프 대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최종태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부분 식민 시대를 몸으로 겪었던 재일 동포 1세대의 애국심은 대단했다. 사업 하기 위해선 골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골프장에서 자주 모임을 하게 됐다. 일본은 당시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넘버원을 바라볼 정도로 대단한 기세였다. 일본의 골프 인기가 엄청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 모국의 골프계와 친선을 도모하고 한국 골프 발전과 우수 선수가 나올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국제 수준의 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간사이 지역 경제인들이 뜻을 모은 게 신한동해오픈이다.”
이들이 뜻을 모아 1982년 신한은행을 만들었다. 고마컨트리클럽, 신한동해오픈, 신한은행으로 재일 동포의 모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이어진 것이다.
신한동해오픈은 1~8회 대회를 동해오픈이란 이름으로 열었다. 동해는 재일 동포에게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니 같은 단어다. 일본에서 모국을 보려면 동해(東海) 쪽을 바라봐야 한다고 해서 ‘신한동해오픈’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신한은행이 9회 대회부터 스폰서를 맡으면서 대회 이름이 현재의 신한동해오픈이 됐다. 1981년 9월 8일 경기도 성남시 남서울CC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다. 국내에 변변한 골프 대회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1500만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제1회 및 2회 신한동해오픈 우승을 차지한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은 신한동해오픈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1981년 신한동해오픈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뛸 듯이 기뻤다. 당시에는 골프 대회가 많지 않았다. 물론 선수도 적었다. 우리나라 골프가 발전하려면 대회 수가 늘어나야 했다. 그래야 선수도 늘어나니까. 그런 의미에서 신한동해오픈이 큰 역할을 했다. 대회가 하나 늘어난 것 자체도 좋았지만, 특히 상금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거든. 그때 선수들이 정말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제38회 신한동해오픈은 일본 남녀 프로골프 대회를 통틀어 한국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첫 대회였다. 한국과 일본, 아시안투어에서 40여 명씩 정상급 선수가 출전했다. 158㎝의 단신이지만 300야드 장타를 뿜어내는 일본의 히가 가즈키가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관계자들은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것도 좋지만 일본 선수가 우승해서 일본인이 대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며 환영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 경제 발전과 시야가 그만큼 넓어진 덕분일 것이다. 처음 일본에 고마컨트리클럽을 세우고, 또 한국에 신한동해오픈을 만든 재일 동포들이 고국에 거는 기대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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