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실패 용인하고 돌파구 여는 연구에 집중..미래 산업에 기여"[청론직설]
항공우주국, 20~30년 뒤 쓰일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
논문 몇개 썼느냐보다 특허와 기술 이전 중시하는 문화
현재 달 기반 화성 등 심우주 탐사 '아르테미스'에 주력 ?
양자에너지 활용하면 15년 뒤 화성 비행 2개월로 단축
韓, 전담기구 만들고 뉴스페이스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개발(R&D) 생태계를 갖고 있습니다. 20~30년 뒤에 쓰일 기술 개발에 많이 투자해 미래 산업 생태계 형성에 기여합니다.”
최상혁 나사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서울을 방문해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나사는 실패 가능성이 커도 위험을 감수하고 돌파구를 여는 연구에 집중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연구자들이 논문을 몇 개 썼느냐보다 특허와 기술이전을 더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사는 달을 기반으로 화성과 소행성 등 심우주 탐사를 하려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며 “한국도 달 탐사 등에서 국제 우주 협력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 뉴 스페이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먼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부터 얘기해보자. 달까지 날아갈 나사의 초대형 로켓(SLS·Space Launching System) 발사가 계속 늦춰지고 있는데.
△액체수소 연료 누출로 두 차례 연기됐고 27일 오전으로 예정된 세 번째 발사도 열대성 폭풍 탓에 보류됐다. 길이 98.1m인 SLS가 마네킹 3개를 태운 오리온 우주선을 달 전이 궤도에 제대로 올려놓고 그 우주선이 안전하게 귀환하는지를 보는 것이 목표다. 마네킹은 뼈와 장기 등 인체 조직과 같은 물질로 이뤄졌으며 센서 5600개, 방사능 감지기 34개가 장착된다.
-2024년으로 예정됐던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 추진이 미뤄진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렇다. 나사는 당초 우주인을 태우고 달 궤도를 다녀오는 시험비행을 한 뒤 2025년에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켜 과학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이 2025년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돈다. 1년 반 정도 늦춰지는 셈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까지 몇 차례 인류가 달에 착륙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왜 이렇게 어려운가’라는 궁금증이 있는데.
△1960~1970년대 달에 우주인을 보내 토양 채취와 몇 가지 과학 실험을 하고 돌아오던 아폴로 프로젝트와 다르다. 우주인을 달, 나아가 화성에까지 정착시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달에서 자원을 채취, 정련해 쓸 수 있는 구조와 기자재를 개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화성이나 소행성을 탐색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구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처럼 달 궤도를 도는 게이트웨이(Gateway) 건설도 당초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혹시 이 계획도 순연되는가.
△그 계획은 그대로 가는 것으로 안다. 나사는 앞으로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구축해 우주탐사에 필요한 연료를 보관하고 탐사선 구조물도 구축해 화성 등 심우주로 가는 발사체를 그곳에서 바로 발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발사체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연료를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게이트웨이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유럽연합(EU), 캐나다가 적극 참여해 2020년부터 제작이 이뤄져왔다. 당초 목표대로 2024년 11월 스페이스X 발사체에 구조물이 실려 달 궤도에서 순차적으로 건설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이 외환 위기 직후 재정이 부족해 ISS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게이트웨이에는 꼭 참여해야 할 텐데.
△게이트웨이 참여는 한국의 우주탐사·과학기술·산업을 일으키는 데 하나의 이정표이자 기폭제가 될 것이다. 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모듈을 개발해 게이트웨이에 부착할 수도 있다. 여의치 않으면 미국과의 공동 참여 방안을 모색해도 된다.
-우리나라가 게이트웨이에 참여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의사를 타진했으나 아직 성사되지 않았는데.
△한국이 나사와 같은 우주 전담 기구를 갖고 있지 않고 우주 예산에 관해 확고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이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아르테미스 협정에 가입해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
-화성 정착촌 건설이 왜 필요하다고 보고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기후 위기 심화에도 대비해야 하고 과학적 탐구, 과학기술 개발 측면에서 필요하다. 화성 정착촌 건설은 30년쯤 뒤인 2050년대 초반은 돼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나사도 이들과 협력하며 화성에 우주인들을 정착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지 식물 재배라든지 각종 주거지 모델을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다. 단 그 이전에 달 궤도를 도는 게이트웨이가 성공해야 하고 달 유인 기지 건설이 이뤄져야 한다. 나사는 2030년대에 첫 우주인을 화성에 보내려는 계획이지만 이는 탐색에 지나지 않고 정착촌 건설은 별개의 문제다. 화성에 정착촌이 형성되려면 현지에 많은 물과 이산화탄소(96%)를 활용해 산소와 수소를 생산해 숨도 쉬고 로켓연료로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연료는 장기적으로 화성 궤도에 건설되는 우주정거장에 저장해 지구로 돌아올 때 사용하면 된다. 다만 화성에서는 태양빛이 약해 태양광 효율이 떨어져 새로운 동력원을 개발해야 한다.
-현재 우주 비행체로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6개월이 걸린다. 이동하는 사이에 우주인이 버티기 힘들 텐데.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려면 로켓 기술도 좋아야 하고 우주인의 안전도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화학연료를 쓰는 로켓은 한계가 있다. 나사가 개발 중인 원자력을 활용한 핵 추진 로켓 방식은 화학연료 로켓에 비해 장기간 추진할 수 있고 비추력(연료 1㎏을 1초 동안 연소시켰을 때 밀쳐 나가는 힘)도 높은 장점이 있지만 핵반응로 구조물과 방사능 차폐 장비로 인해 중량이 늘어나게 된다. 현재 나사는 텍사스에 있는 애드아스트라사에 지원해 새로운 방식의 로켓(VASIMR)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메가와트(㎿)급의 동력원이 없는 게 문제다. 만약 이 같은 동력원을 확보하면 약 15년 뒤에는 지구에서 화성을 2개월 내로 갈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사 랭글리연구소에서 새로운 동력원에 대해 실험실 수준에서 성공해 기업에 기술을 이전 중이다. 이 동력원은 10㎿ 이상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비추력과 추진력을 높일 수 있는 핵융합 추진 방식을 들 수 있는데 성공하면 화성까지 2주가량이면 갈 수 있겠지만 개발까지 최소 20~30년은 걸릴 것이다. 다만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고전적 플라스마 핵융합 방식으로는 어렵다. 최근 나사에서 제시한 새로운 핵융합 원리를 사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이제는 나사의 R&D와 기술 사업화 생태계에 관해 얘기해보자. 우선 나사가 그동안 인류 문명에 기여한 점과 이 기관의 예산 규모를 소개해달라.
△예산은 올해 260억 달러(약 36조 4000억 원) 규모인데 1960년대 아폴로 프로젝트의 예산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될 것이다. 할 일은 많은데 돈이 모자란다. 그동안 비행기·헬리콥터·군용기 등 나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보잉 787에 쓰이는 탄소섬유도 1970년대에 나사에서 개발했다. 전자레인지, 로켓 기술, 궤도 역학, 기상·통신·항법 등 인공위성, 천체망원경, 가상현실(VR), 극한 기술, 신소재, 천문 과학 등도 있다.
-나사는 R&D에서 실패를 용인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기술 사업화도 장려하지 않나.
△그렇다. 나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분야에서 도전해왔기 때문에 실패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는지 모르겠다. 실패에도 관대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도전하도록 격려한다. 이미 1993년에 논문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명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특허를 내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기술이전 조직(TLO)도 잘돼 있어 기술이전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특히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약 20%의 시간을 각자 자율적으로 창의적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때는 어느 누구도 간섭하거나 불편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시대임에도 한국의 국가 R&D 시스템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의 우주 생태계 발전을 위해 조언할 게 있다면.
△한국 대학 등 연구계에서는 논문 중심의 문화가 있는데 때로는 논문을 통해 기술이 새어나간다. 앞으로는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연구를 골라 집중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한국은 미래를 내다보는 인적 자원들을 갖추고 있다. 국력과 공업력을 측면에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의 국력을 능가하고 공업력은 거의 20배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국 내부에서는 이런 위상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감이 좀 부족하다. 국가적으로 우주개발에 역점을 두고 장기 목표를 설정해 지원하고 자신감을 갖는 게 필요하다.
◆He is···
1944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나 춘천고와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랭글리연구소에서 첨단 전자·에너지 물질을 개발하는 연구를 해왔다. 새로운 반도체 기술과 우주 탐색에 필요한 신동력 장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60개가량의 미국 특허 또는 국제 특허를 갖고 있다. 재작년 나사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고 나사에서 ‘특별 서비스(Exceptional Service) 훈장’과 우수혁신상 등을 받았다. 나사에서 양자기술위원·고위험성공전략위원·아이디어발상혁신위원·포상심사위원도 맡고 있다. 미국발명한림원 석좌회원, 미국광학회 석좌회원, 미국우주항공학회 부석좌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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