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1500원도 각오해야"..개입할수록 투기세력 가세 '딜레마'
국민연금·한은 외환스왑
수출업체 선물환 매도 지원 등
원화값 방어책 약발 안먹혀
달러인덱스 20년만에 최고
국채 3년물 금리 4.5% 돌파
장·단기 역전폭 사상최대로
◆ 요동치는 금융시장 ◆
여기에는 37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한 영국 파운드화의 영향도 컸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이 50년 만에 최대 규모 감세안을 발표하자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하루 만에 3.57% 하락한 1.0859달러를 기록했다. 파운드화 가치 하락은 강달러 현상에 불을 붙였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20년4개월 만에 최고치인 114를 돌파했다. 이 같은 파운드화 폭락세가 26일 아시아 시장으로 옮아가면서 여진이 이어졌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주요 통화 중 하나인 파운드화의 움직임이 커지면 신흥국 통화의 변동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외환당국은 외환 시장 안정화를 위한 일부 조치를 내놓았지만 오히려 원화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대응이 쉽지 않다. 국민연금공단은 한국은행과 14년 만에 외환 스왑을 재개하기로 하고 다음달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이 체결되면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할 때 외환 시장이 아닌 한은을 통해 달러를 조달한다. 또 정부는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를 지원해 연말까지 약 80억달러 규모의 선물환 매도 물량이 외환 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이 같은 조치들이 원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의 조치가 일부 외환 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외부에서 달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 마감 직전 외환보유액을 풀어 종가를 관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강달러라는 현상을 한 국가가 홀로 막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가격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때 되레 투기 세력이 가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이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한은이 금리 인상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외환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5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한은이 대규모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해석을 낳으며 26일 외환 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추 부총리는 "물가를 잡고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경기와 대출자 부담이 커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통화당국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돼 외환 시장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현재 환율은 심각한 위기 수준이고, 물가와 금융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팔라지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 경기가 더 악화되면 달러당 원화값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 연구원은 "위기를 동반한 침체가 발생하면 달러당 원화값은 150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은 예정에 없던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금융·외환 시장 동향과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국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34.9bp(1bp=0.01%포인트) 급등하며 13년 만에 4.5%를 넘어선 4.548%에 장을 마감했다. 10년물 국채금리는 22.3bp 상승한 4.335%를 기록하며 장·단기 금리 역전폭(0.213%포인트)도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김유신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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