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공격하며 발언 내용엔 침묵..정리 대신 확전 택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비속어 논란에 사안 정리 대신 확전을 택했다. 언론의 ‘허위보도’를 못박아 “국민 위험”을 말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비속어 발언도 부인하는 기조로 가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도 이에 발맞춰 여론 총력전에 나섰다.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사과나 유감표명 대신 진실게임으로 끌고가면서 엇갈리는 주장을 두고 대치 국면이 이어지게 됐다.민생·경제 관련 주요 안건을 다루는 정기국회 어젠다도 ‘비속어’ 논란이 집어삼킬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 문답은 비속어 논란이 수습과 확전 중 어느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지를 가늠할 결정적 순간으로 주목받았다. 윤 대통령은 언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발언 내용 자체에는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 21일 뉴욕 행사장에서의 발언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보도된 데는 “동맹 훼손” “국민 위험”을 들어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실제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대통령실 설명대로 한국국회를겨냥한 경우에도 남는 ‘입법부 폄훼’ 논란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나머지 얘기들은 이 부분(왜곡 보도 주장)에 대한 진상”이 밝혀진 후에 답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통령실의 방어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야당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했다. ‘이 XX’라는 비속어가 사용됐는지에 대해서도 “입장은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2일 김은혜 홍보수석이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과 차이가 있다. 당시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게 아니라면서 지칭 대상이 ‘한국 국회인가’라는 질문에 “예. 미국 의회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국회를 ‘이XX라고 한 데 대한 입장을 묻자 “거친 표현에 대해 느끼는 국민 우려를 잘 듣고, 알고 있다”고 사실상 비속어 사용을 인정하는 취지로 답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발언 중 ‘이XX’도 없었다는 입장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처음에는 윤 대통령 본인도 자신의 발언을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외부 전문업체 2곳에 판독을 맡겼고, 들어보니 ‘이XX’ 발언도 없더라”고 말했다. 비속어 발언도 없었던 만큼 애초에 사과할 일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초반 언론 보도를 왜곡으로 못 박아 ‘선 사과’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한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이 나고 강도가 들었으면 무슨 말을 했든지 사과할 문제가 아니라 강도부터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부터 잘못된 보도에서 시작된 ‘독수독과’이니 독수에 의해 나온 독과를 사용하면 안된다”며 “대통령도 그런 판단을 한다고 본다”고 했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의 대대적인 공세 전환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순방 기간 각종 논란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일부 조사에서 20%대로 떨어진 데 대해 ‘좌파언론’ 색깔론 공격으로 지지층에 소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2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5%포인트 떨어진 28%를 기록했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20일엔 36.4%를 기록했지만 비속어 논란 여파로 23일엔 32.8%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이 직접 대결 정치의 장을 열면서 당분간 정국 경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야당은 외교부 장관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홍보수석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10월 국정감사와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 심의 과정도 난관이 예상된다. 순방 뒤로 계획한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도 만남 형식과 내용을 두고 마찰음이 빚어질 수 있다. 지연되고 있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지명 과정과 인사청문회도 정국 경색과 맞물려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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