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사과 없이 정면돌파.."국민의 생명"까지 언급한 이유
순방 중 '발언 논란'에 휩싸인 윤석열 대통령이 정면 돌파에 나섰다. 문제의 발언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겨냥했다고 보도한 것에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진상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면서 엄중 대응 방침도 밝혔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일제히 "조작 선동"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공세를 펴온 더불어민주당과 MBC를 정조준했다.
논란을 조기 차단하면서 보수 정권에게 악몽이었던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동시에 여권이 그동안 '좌편향'이라며 맹비난해왔던 MBC에 대해서도 '왜곡'으로 맞대응하며 강력 조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글로벌 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행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한 말이 영상에 포착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주위 소음 등으로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해당 발언은 당초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해석됐지만 대통령실은 발언 속 국회는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나라 국회를 의미하며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반박했다.
즉 우리 국회에서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기여 금액을 승인 안 해주면 국가적 체면이 깎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야당을 향해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논란에 직접 입장을 밝히면서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언의 내용과 의미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곡된 채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이를 더불어민주당에서 어떻게 알고 보도 이전에 비판을 내놨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대통령이 '동맹 훼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거론한 것은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순방 외교와 같은 국익 극대화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서 허위보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동맹을 희생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국민이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XX'에 대한 (대통령실 차원의) 입장은 밝히지 않겠다"며 "중요한 건 대통령이 재차 강조했지만 '바이든'이란 단어를 사용할 이유도 없고 맥락도 아니었음에도 그런 보도가 나와서 동맹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이 나갔고 그것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점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으로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MBC PD수첩 방송으로 촉발된 '광우병 사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그동안 새 정부와 날을 세워온 MBC가 이번 발언 논란을 처음 보도하면서 대언론 전선도 날카로워지는 모양새다. 문제의 발언은 순방 기자단 사이에서 이미 공유됐고 진위 확인 등의 과정에서 MBC 등이 유튜브 동영상과 기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확산됐다.
권성동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2008년 광우병 때처럼 지지자를 광장으로 불러내려는 의도였느냐. MBC가 조작하면 민주당이 선동하는 방식이 광우병 시기와 똑같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을 봐야 한다. MBC는 대통령의 발언에 악의적인 자막을 입혀 사실을 왜곡·조작했다. 민주당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유통하면서 대여투쟁의 흉기로 쓰고 있다. 이것은 '대국민 보이스 피싱'"이라고 주장했다.
MBC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의혹을 일축했다. 윤 대통령의 해당 영상이 언론에 노출되기 전에 이미 온라인에 퍼졌고 민주당 측에서 이를 보도 전에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결탁했다는 식의 공격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관심 가졌던 IRA 문제는 제가 버킹엄 리셉션에 가보니까 100여개국 이상이 모이는 그런 자리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그야말로 장시간을 잡아서 이렇게 뭘 한다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라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만 해도 30개국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18일 영국 런던에서 찰스 3세 국왕 주최로 열렸던 리셉션에 각국 정상들과 함께 자리를 해보니 바이든 대통령과 일정 시간 이상 회담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알았다는 얘기다. 한미일 정상회담 등이 열렸던 지난 6월 말 나토 순방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당초 미국 뉴욕 유엔총회 일정 가운데 한미정상회담이 추진됐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정치 일정 등을 이유로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시작됐던 20일 뉴욕이 아닌 워싱턴에 머무르면서 각국의 양자회담 일정이 더 차질을 빚었다.
윤 대통령은 "그래서 참모들에게 그랬다. 미국 대통령하고 장시간을 잡기도 어려울 것 같고 무리하게 추진하지 마라, 그 대신 장관 베이스(차원)에서 그리고 양국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베이스에서 더 디테일하게 빨리 논의를 해서 바이든 대통령과는 최종 컨펌만 하기로 하자, 그렇게 해서 IRA 문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입장을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확인을 했다"며 "하여튼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기업에만 별도의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관급에서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쳤고 바이든 대통령과는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상 간에 '컨펌'(확인)을 했다는 의미다. 그 컨펌 내용 또한 '우리 기업에만 별도의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협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48초 회동'에 그쳤지만 필요한 성과는 거뒀다는 설명이다. 본인이 직접 참모에게 지시했다고 표현함으로써 외교라인 경질론 등 비판에도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양국 정치적 상황이 민감한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역시 우리는 정상회담이라 표현했지만 일본에서는 '간담'으로 언급하는 등 이번 정상회담을 놓고 온도 차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한일관계가 너무 많이 퇴조했고 그래서 일본 내 여론도 있고 우리 국민들의 여론도 있고 양국 국민들의 생각을 잘 살펴 가면서 무리 없이 관계 정상화를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한국의 기업과 일본의 기업들은 양국의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양국 기업이 상호투자를 함으로써 아마 일본과 한국 양쪽에 일자리도 더 늘 것이고 양국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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