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훈 산은 회장 "대규모 자금 투입 외 대우조선 살릴 방법 없었다" (종합)

조귀동 기자 2022. 9. 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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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2조원 유상증자 방식으로 대우조선 인수
"국내 제조 대기업 거의 전부 접촉"
"사외이사 파견 형태로 경영 참여 검토"

“누군가 대규모 자금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하지 않는 한, 회사를 살릴 방법이 없다고 봤습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26일 대우조선해양을 한화에 2조원에 매각한다는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해당 발표 직후 기자와 만나 이같이 설명했다. 이번 매각이 최종 성사될 경우 한화가 산은에게 직접 지불하는 대가는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한 6개 회사가 총 2조원 규모의 자금을 대우조선에 유상증자할 뿐이다. 회사가 살아나면 기존에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 가치가 상승하고, 미리 손실로 계산한 1조6000억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이익이 늘어나는 정도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연합뉴스

산업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한화 계열사를 대우조선 신규 투자자로 유치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산은과 한화는 이를 골자로 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앞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는 같은 날 오전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대우조선의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매각은 산은이 보유한 기존 주식(이른바 구주·舊株)을 한화가 인수하지 않는다. 전부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이다. 그만큼 회사에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강 회장은 한화로의 매각에 나선 이유에 대해 “1월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이 무산된 이후 경영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현재 경쟁력 수준과 시장 환경에서는 자력에 의한 정상화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며 매각 사유를 설명했다. 대우조선을 인수하길 원한 기업이 없었다는 얘기다. 강 회장은 “2015년 분식회계가 드러난 이후 7년간 기업가치가 속절없이 하락했다”며 “지난해 1조7000억원, 올 상반기 6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해양 매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KDB산업은행

그는 “제조업을 영위하는 국내 대기업집단 거의 전부와 접촉해 매각 의사를 타진했는데, 한화가 이에 응했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자 유치도 여의찮다. 방위산업 부문이 있는 데다 LNG선 등 국내 조선업 경쟁력에 긴요한 핵심 기술들이 유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다른 조선사들의 매수는 LNG선 시장점유율 등으로 해외 경쟁 당국의 인허가를 얻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매수자가 마땅히 없는 걸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는 인수가다. 한화의 납입 자본은 주당 1만9150원에 맞춰 주식으로 전환된다. 지난 26일 종가 2만2000원 대비 10%가량 낮다. 26일 시가총액은 2조3600억원.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한화 지분율은 49.3%가 되고, 현재 55.7%인 산은 지분율은 28.2%로 줄어든다.

/조선비즈

강 회장은 “투자 유치를 통해 대우조선은 향후 부족자금에 대응하고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재원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대주주의 등장으로 과감한 R&D(연구개발)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국내 조선업의 질적 성장을 유도해 조선업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대우조선 매각은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산은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왔다. 투자은행(IB)이면서 동시에 배드뱅크(부실자산을 모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은행)와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산은 산하 기업들 중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산은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조선업 호경기에는 매각을 하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매각을 시도했다가 무산됐다. 이후 해양플랜트 사업 부실 여파로 재무 지표가 계속 악화됐다. 2015년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산은이 대우조선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없다는 의견도 힘을 얻게 됐다.

강 회장은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당사자의 고통 분담, 지속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이라는 기존 산은 구조조정 기조에 더해 신속한 매각 추진이라는 원칙을 말한 바 있다”며 매각 발표 앞부분에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매각 가격을 더 받는 것보다 빠른 매각이 중요하다”며 “매각 가능할 때 바로 매각하는 게 저의 원칙”이라고도 했다.

이번 매각은 인수 예정자를 선정해 놓고 별도로 공개 경쟁입찰을 진행하며 입찰 무산 시 인수 예정자에게 매수권을 주는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이뤄진다. 10월 17일까지 제3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입찰의향서를 받는다. 이후 상세실사를 거쳐, 최종투자자를 선정한다. 한화는 경쟁 과정에서부터 참여한다. 산은과 한화는 한화 계열사가 총 2조원 규모로 유상증자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조원, 한화시스템 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 4000억원, 한화에너지 산하 자회사 3개가 1000억원을 각각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산은은 올해 안에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상반기 매각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조선비즈

원활한 매각을 위해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기존 금융지원 방안을 5년간 연장 유지할 계획이다. 특히 수은의 영구채 조건을 바꿔 스텝업 금리를 조정한다. 산은은 2조33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갖고 있는데, 대우조선이 원금을 갚지 못하면 현재 연 1%인 금리가 최대 10% 이상으로 올라가도록 되어있다. 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매각으로 회사가 정상화되면 대손충당금 1조6000억원만큼 산은이 순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유한 지분 가치가 올라가면서 지분법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서 산은은 대우조선에 공급한 자금이 4조10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손실은 3조5000억원으로, 대손충당금이 1조6000억원을 차지한다. 그리고 주식 손상 규모가 1조8000억원이다.

산은은 한화가 인수하면 대우조선이 산은 등의 정책 자금 지원에 의지한 저가 수주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강 회장은 “대우조선의 저가 수주는 일정 부분 산은의 자금 지원에 의지한 바가 있었다”며 “민간 대주주가 회사를 인수하면 그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2대 주주로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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