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극복하려고 인간은 문학을 발명했다"

김유태 2022. 9.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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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토카르추크
신작 '다정한 서술자' 출간
질병 두려움 줄어든듯 보여도
전쟁·고물가로 또 위기상황
"러시아의 탐욕 용납 못해"
세상은 안전한 곳 아니어서
문학으로 위기 알리고 위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 제공 = 민음사·Karpati&Zarewicz·ZAiKS]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60)의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제목은 '다정한 서술자'였다. 그는 '다정함'을 이렇게 정의한다.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 토카르추크에게 서술자의 다정함이란 연대와 공감이 수반된 글쓰기와 동의어가 된다.

현존하는 21세기 노벨상 수상 작가 중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토카르추크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민음사)가 출간됐다. 노벨상 이후 첫 신간이다. 에세이 6편과 강연록 6편을 엮은 책은 최성은 한국외대 교수의 번역으로 서점가를 찾았다.

토카르추크는 26일 한국 언론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재앙의 공포와 이야기 문학의 상관관계'를 힘줘 말했다.

이번 책 '다정한 서술자' 출간 계기는 코로나19였다고 그는 쓴다. 전염병의 세월은 저물어가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위험한 풍경이 지속된다. 고물가가 대위기의 징조처럼 드리우고 폭우와 가뭄이 악몽의 전조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토카르추크는 "공포를 극복하려고 인간은 문학을 발명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우리는 초창기에 만연했던 공포를 꽤 많이 극복했다. 그 대신 전쟁, 인플레이션, 기후재앙 등 또 다른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인간이 문학을 발명한 것도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공포의 세기. 세상이 바뀌어도 문학, 즉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고 토카르추크는 쓴다. 그에게 '이야기'는 세상을 이루는 다섯 번째 물질이다. 인간은 한때 물, 불, 흙, 공기를 세상을 이루는 4대 원소로 본 바 있다. 토카르추크는 여기에 하나 더 덧대어 "이야기가 인간 세계의 다섯 번째 원소"라고 설명한다. "놀라게 하고, 감정을 일깨우고, 변화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그런 문학을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님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노벨상 수상 이후 단번에 그의 대표작으로 떠올라 세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참 내려오지 않았던 책 '방랑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추억했다. 토카르추크는 '방랑자들'을 두고 "한 시대를 기록한, 역사책이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고백했다.

"이 책은 세상이 개방돼 있고, 세계화 추세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여겼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인데, 오늘날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전염병이 국경의 빗장을 걸어 잠갔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국경이 폐쇄됐다. 여행은 누군가에게 특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전쟁과 배고픔으로부터 탈출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어떤 의미에서 '방랑자들'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시에 거주하는 토카르추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상을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번 책에 담긴 글 '헤르메스의 과업'에서 '문화의 해석가'로서 번역가의 중요함을 강조한 그는 새롭게 '번역'되기를 희망하는 국가로 러시아를 꼽았다.

토카르추크는 "러시아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이웃 나라를 침략했는지 알 수 없고, 야망과 탐욕을 용납할 수도 없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러시아야말로 현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돼야 하는 나라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토카르추크는 노벨상 상금 일부를 출자해 '올가 토카르추크 재단'을 만들었다. 폴란드 문학을 옹위하면서 환경운동을 펼치는 재단이다. 특히 브로츠와프시가 속한 주 헌법에 동물의 존재와 권한을 명시하게끔 하는 활동을 벌였다고도 털어놨다.

"인간 활동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자 강, 산, 풍경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 꿈이다. 특히 집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먼 훗날 언젠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우리 컴퓨터 스크린이 꺼져버리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종이책이 다시금 가치 있고 바람직한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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