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으로 돌아간 주식시장..'매의 발톱' 세운 美 연준에 개미 비명
원·달러 환율, 13년 만에 1430원 돌파
"코스피 1920까지 내릴 가능성 열어둬야"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 글로벌 증시를 부양해온 ‘유동성 잔치’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며, 주가지수도 2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넘었고, 우리 증시에서는 외국계 자금이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증권 업계에서는 지금의 한파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1900대 초반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열어 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 코스닥·코스피, 2020년 5·7월 수준으로 떨어져
26일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6.99포인트(5.07%) 내린 692.37로 마감했다. 장중 한때 690.60까지 내리기도 했다. 2020년 5월 19일(장중 최저치 687.67)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닥지수는 2020년 초부터 2021년 말까지 2년 간 넘치는 유동성에 힘입어 53%나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개인 투자자는 코스닥시장에서 무려 27조원어치를 사들이며 랠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한 상태다. 연초까지만 해도 1030을 넘었으나, 9개월 만에 33% 넘게 하락하며 700선을 내줬다. 4조3000억원어치를 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하락장을 주도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현재 하락장은 주로 금리 상승에 기인하는 만큼, 지난주 미 증시에서 나스닥지수가 특히 많이 하락했듯 코스닥시장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또 코스닥시장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 신용거래에 따른 반대매매가 나오며 주가의 낙폭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매매란 신용융자를 통해 주식을 산 투자자가 담보유지비율(자산 평가액을 대출금으로 나눈 값)을 지키지 못할 경우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전날 종가의 하한가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주가의 낙폭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코스피지수는 코스닥지수에 비해 조정 폭이 크지 않으나, 마찬가지로 2년 전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9.06포인트(3.02%) 내린 2220.94로 마감했다. 장중 최저치는 2215.36이다. 연저점을 경신한 것은 물론이고, 2020년 7월 27일(장중 최저치 2203.48)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들어 누적 하락률은 26%에 육박한다.
양대 주가지수가 급락하는 동안, ‘사자’를 지속하며 하방 지지선을 떠받쳐온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개인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23조3000억원을, 코스닥시장에서 8조6000억원을 순매수했다.
◇ 13년 만에 바닥 찍은 원화 가치…한은 보폭 커질까
현재 우리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미 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이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FOMC 9월 회의가 끝난 후,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 2.25~2.50%에서 3.00~3.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점도표(dot plot·연준 이사와 연방은행 총재들이 예상하는 향후 정책 금리를 점으로 찍은 표)에 나타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도 100bp(1%포인트)나 높아졌다. 연준이 이번 FOMC 이후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FOMC 전까지만 해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폭이 9월에 최대치를 찍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증시가 올해 4분기 조금이나마 반등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그러나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스탠스를 재확인해준 만큼, 증시 반등 예상 시점도 뒤로 미뤄졌다”고 말했다.
연준 정책의 매파적 색채가 짙어짐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2원 오른 1431.3원으로 마감했다. 환율이 1430원을 넘은 것은 13년 6개월 만의 일이다.
이 센터장은 “원·달러 환율은 이미 펀더멘털(기초체력) 기준 적정선을 넘어갔다”며 “환율이 얼마까지 더 오를지는 사실상 예측이 무의미한 상태”라고 말했다.
원화 약세는 한국은행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정 상무는 “원화 가치가 이렇게 많이 떨어지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폭이 예상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현행 기준금리는 2.5%다. 이달 FOMC를 기점으로 미 기준금리에 0.5~0.75%포인트 뒤처지게 됐다. 미국의 올해 말 기준금리가 4.5%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공식화한 만큼, 한국은행도 연준의 매파적 행보에 어느 정도 발맞춰 기준금리를 3.5%까지는 올릴 가능성이 크다.
금리 인상은 특히 기술 성장주에 직격탄으로 작용한다. 성장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지수가 유독 많이 떨어진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성장 기업 주가에는 미래의 현금 흐름이 반영되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향후 조달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난다. 이는 필연적으로 현 기업가치를 할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 7~8월 베어마켓랠리 때와 전혀 달라…“전망 자체가 무의미해”
지난 7~8월 우리 증시에서 베어마켓랠리(약세장 속 반등)가 나타난 적이 있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 상무는 “7월에는 이른바 ‘파월 피봇(pivot·입장 선회)’, 즉 연준의 긴축 종료와 이완 정책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외국계 자금 유입을 이끌었지만, 8월 말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 이후 그런 기대감은 사라진 상황”이라며 “연준이 올해 안에 매파적 기조를 누그러뜨릴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도 “7월 초와 비교하면 지금 금리와 원·달러 환율은 훨씬 더 높아졌고, 금리 인상 등의 매크로(거시) 요인들이 아직 증시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1900대 초반까지 떨어질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내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주당순이익(EPS)이 올해보다 5~10% 감소한다는 가정하에, 코스피지수의 적정 수준은 1920~2020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내년 중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우리 증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이 센터장은 “연준이 공격적 긴축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물가는 떨어지겠지만, 그 대신 경기 침체가 점점 가시화할 것”이라며 “주식의 저가 매수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되면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초 메리츠증권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연간 순이익 합계를 195조원으로 추산했으나, 3분기 실적 발표 후에는 170조~180조원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이 센터장은 설명했다.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워낙 크다 보니, 업계 일각에서는 전망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7~8월 일시적으로 베어마켓랠리가 나타났던 것은 물가가 정점을 통과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 때문이었는데, 이후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기존 시장 전망이 빗나가자 투자자들이 질려버린 상태”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증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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