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든 군인 옆 '투명함'에 한표"..우크라 점령지 투표 모습은

박가영 기자 2022. 9. 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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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 대한 자국 영토 합병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정황이 속속 나온다.

러시아 편입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오는 30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실상 이 과정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투표 기간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것을 금지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집마다 돌면서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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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 휘두르는 여론조사"..27일까지 닷새 투표, 30일 결과 나올 듯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지역 주민이 투명 투표함에 러시아 영토 합병 찬반 주민투표 용지를 넣고 있다./로이터=뉴스1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 대한 자국 영토 합병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정황이 속속 나온다. 비밀투표라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투명 투표함에 투표지를 수거하고 있으며,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투표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현지시간) 타스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세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과 러시아군이 점령한 남부 헤르손, 자포리자 등 4곳은 지난 23일부터 러시아와의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 중이다. 러시아는 루한스크주와 헤르손주 대부분 지역, 자포리자주 80%, 도네츠크주 60%가량을 점령 중으로, 이들 점령지는 우크라이나 전체 면적의 약 15%에 달한다. 투표는 오는 27일까지 닷새간 이어진다.

이번 투표로 전쟁은 중대 기로에 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가 점령지 편입이 결정되면 해당 지역에 대한 공격을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확전 의지를 밝히고 있어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태다.

러시아 편입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오는 30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실상 이 과정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2014년 무력으로 점령한 크름반도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해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당시 찬성률은 무려 97%였다.

투표가 비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투표 기간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것을 금지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집마다 돌면서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관리들이 러시아 합병에 반대하는 유권자의 이름을 적어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텔레그램에 "주민투표는 기관총을 휘두르는 여론조사에 가깝다"고 비난했다.

영국 BBC방송은 무장한 러시아 병사가 직접 집을 방문해 합병 찬반을 확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현지 주민은 "병사에게 찬반 여부를 직접 말해야 하고, 병사가 적은 용지를 갖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총을 든 병사(왼쪽)와 투명한 투표함을 든 여성(오른쪽)이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 계단을 모르는 모습.(영상 갈무리) 이 영상에는 9월 23일이라고 날짜가 표시돼 있다. 트위터에 영상을 올린 이는 남부 우크라이나에서 찍힌 것이라고 썼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 투표함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반대 의사를 밝히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 에네르호다르 망명 시장인 드미트로 오를로프가 온라인에 게시한 영상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투표함을 든 여성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로이터통신도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의 유권자들이 개방된 장소에서 투표용지를 접지 않은 채 투명 투표함에 넣는 모습을 포착했다.

25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이동식 투표소에서 러시아 영토 합병 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러시아는 이번 주민투표 참여율이 사흘 만에 70%가 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스통신은 "3일간 투표율은 77.12%"라며 "12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주민투표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크름반도의 친러시아 기관 정치사회연구소는 투표 첫날 자포리자 주민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93%가 러시아 편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가짜 투표'의 결과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사이비 투표에 대해 전 세계가 절대적으로 공정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주민투표는) 국제법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한편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가 핵 무기를 쓸 경우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러시아 측에 경고했다고 25일 언론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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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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