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강제 노역 보냈던 쿠바, 동성혼 인정 국민투표 실시
한때 성소수자들을 직장에서 해고하고 재판 없이 노역형에 처해온 중미 쿠바가 25일(현지시간) 동성혼을 인정하는 새 가족법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쿠바에서 국민투표를 실시된 것은 쿠바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1959년 혁명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쿠바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쿠바 유권자 580만6078명이 전국 2만4000개 투표소에서 새 가족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찬성표가 50%를 넘으면 통과된 것으로 간주된다. 공식 집계는 5일 뒤에 발표되지만 잠정 결과는 26일 나올 예정이다.
새 가족법 지지자들은 새 가족법이 쿠바 성소수자들의 권리 신장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9월 쿠바 정부가 1975년 가족법을 대체하기 위해 마련한 새 가족법은 동성혼과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권, 대리모 출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날 투표에 앞서 기자들에게 새 가족법은 쿠바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은 편견과 금기를 철폐할 것이라고 밝혔다.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쿠바의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재판 없이 수감돼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0년 멕시코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쿠바는 1979년 동성애를 비범죄화했으나 그 뒤로도 동성혼은 법적으로 금지돼왔다. 중남미에선 현재까지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32개 주 중 18개 주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쿠바의 새 가족법은 중남미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것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가톨릭과 복음주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쿠바는 2018년 개헌을 통해 동성혼을 합법화하려 했으나 가톨릭과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의 반발에 밀려 해당 조항을 개헌안에서 제외한 바 있다.
쿠바에서 국민투표는 통상 압도적 다수로 통과됐으나 2018년 모바일 인터넷이 합법화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이번 국민투표에선 과거보다 많은 이견이 표출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의 경제 제재와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제난과 식량 및 전력 부족에 대한 쿠바인들의 불만이 팽배한 데다 지난해 7월 생활고를 호소하는 쿠바인들의 대규모 시위를 정부가 강경 진압한 데 따른 후폭풍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미국의 중남미 전문매체 아메리카스쿼털리는 쿠바 정부가 경제난과 사회적 위기로 추락한 쿠바의 대외적 이미지를 가족법 개정으로 돌파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전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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