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37)생활혁신의 시작, 차이와 반복

2022. 9. 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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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이데아를 이상·본질·근본이라 하고 현실은 이데아를 모방한 허상·거짓이라 했다. 소나기, 이슬비, 장대비 등은 비(雨)라는 이데아를 모방한 허상일 뿐이다. 다만 모두 비라는 이데아를 품고 있기 때문에 번개나 천둥과 달리 비에 포섭된다. 헤겔은 공동체나 자신 안의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단계에서 그 모순을 찾아 드러내는 단계로 넘어가고, 그 모순을 두고 치열한 투쟁을 함으로써 대안을 찾아 해결에 이른다고 했다(正反合의 변증법). 그러나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을 이야기한다. 이데아는 없다. 소나기·이슬비·장대비는 허상이 아니라 실재이고, 같은 비에 속하지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유한 이름으로 불린다. 차이는 모순과 달리 부정하거나 투쟁하지 않고, 서로 긍정한다. 삶은 반복의 연속이고 반복이 끝나면 삶도 끝난다.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지만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 반복에서 나오는 차이를 읽고 그 차이를 반복하며 발전하고 있다. 유인원은 오랜 세월의 차이와 반복을 거듭함으로써 현대 인류가 됐다.

산업화시대 기술혁신을 보자. 대량 공급하는 상품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반복 속에서 불량을 제거하기 위해 분업·협업을 도입해서 숙련공을 늘리고, 기계를 고도화했다. 불량을 제거해 동일성과 균일성을 높이면서 차이가 줄기 시작했다. 고객의 수요를 초과한 제품은 우수했지만 재고로 쌓였다. 불량을 줄이다가 차이마저 없앤 결과다. 차이의 부정은 기업도 망가뜨렸다. CEO·경영진의 의견과 다르면 차이가 아니고 불량이었다. 무능하다고 좌천되고 해고됐다. 차이를 잃은 반복은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 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졌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3M의 스펜서 실버는 강력한 접착제를 만드는 연구를 반복했지만 실패했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것만 나왔다. 그의 동료 아트 프라이는 찬송가책에서 부를 노래가 있는 곳에 종이를 끼워 넣었는데 바닥에 자주 떨어지곤 했다. 그 순간 실버의 쓸모없는 접착제를 떠올렸다. 붙였다가 떼었다가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이다. 불량이 차이가 되는 순간이다. 페니실린도 보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용기에 포도상구균을 배양해 둔 것을 깜빡하고 뚜껑을 닫지 않은 채 휴가를 떠났다. 돌아와 보니 용기는 포도상구균을 먹어 버린 푸른 곰팡이로 가득했다. 불량에서 발견한 차이는 세균을 잡는 페니실린 개발로 이어졌다. 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자. 붓에 물감을 묻혀서 도화지에 흩뿌려 만든 작품이다. 물감 뿌리기는 그 특성상 붓을 떠나는 순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좋은 작품이 나오긴 어렵다. 엄청난 반복을 통해 차이(감동)가 있는 그림이 나올 때 작품이 된다.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도 같다. 몇 가지 물감만으로 커다란 화면을 채운다. 물감과 도화지가 버려지기를 반복한 끝에 차이가 나와야 작품이 완성된다. 그 앞에서 약 70%의 관객이 눈물을 흘린다.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를 보자. 기존에 없던 영토를 새로 만들었다. 오프라인 등 기존의 영토를 파괴하지 않았다. 그 위에 새로운 가치를 더했다. 최초의 가상공간은 현실세계를 엉성하게 베껴 온 불량이었지만 그것을 차이로 인식한 기업이 지금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 안에서 음악·게임·쇼핑·사교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디지털 자산은 NFT로 만들어져서 거래된다. 이것이야말로 반복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활혁신 과정이다. 차이와 반복은 인간이 일하는 모든 곳을 연구소로 만든다.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반복에서 차이를 간파하고 그 차이를 반복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자. 오직 개방된 사고로만 가능하다. 과거 성공 경험에 눌러앉아선 미래가 없다. 차이를 말하는 사람을 존중하라. 그것이 생활혁신의 시작이고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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