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찬반 투표해"..총 든 러군, 우크라서 '공포의 가정방문'
[러, 우크라 침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역 4곳을 러시아로 편입하기 위한 합병 찬반 ‘주민투표’를 26일에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무장한 러시아 군인이 집에 찾아와 찬반 의사를 묻는 등 공정성이 의심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은 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주민투표가 실시되고 있는 동부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 남부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지역에서 가정 집에 찾아와 주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고 24일 전했다. 자포리자주의 도시 에네호다르에 사는 한 여성은 “군인들한테 말로 (편입) 찬반을 답해야 하고, 군인이 답변을 종이에 표시한 뒤 가져간다”고 말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주민 투표는 지난 23일부터 시작했으며 27일까지 할 예정이다.
자포리자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멜리토폴에 사는 한 여성은 <비비시>에 “현지 ‘협력자’ 2명이 러시아군 2명과 함께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에 왔다”면서 “우리 아빠가 (주민투표에서) 반대 입장을 냈고, 가까이 서 있던 엄마가 ‘반대하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묻자 군인들은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가족이 편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군이 괴롭힐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여성은 투표가 사람 수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가구당 1표’로 진행됐다고 했다. <비비시>는 “이러한 증언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장한 군인이 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러시아가 주장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절차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투표 시작 날인 23일 <타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은 무장 군인들의 가가호호 방문 투표에 대해 “안전(보안)”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직접 투표는 27일에만 있을 예정이고 다른 날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그리고 가정 방문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주민 투표 결과는 27일 밤께 발표될 것으로 보이지만 서방 국가들과 외신들은 사실상 ‘답이 정해져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영국 외교부는 이미 러시아가 목표치를 설정해놓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한, 루한스크·도네츠크주는 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자들이 자칭 ‘독립국’을 건설해놓은 상태이고 남부 자포리자, 헤르손주 역시 러시아군이 점령하며 우크라이나 시민 상당수는 피란을 떠나고 남은 이들 중에는 친러 성향 주민이 많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도 러시아 편입을 찬성하는 의견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도네츠크, 루한스크주 선거 당국이 25일 이날까지 사흘 동안 이 지역 투표율이 각각 76%, 7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선거 당국은 국제 규정에 따라 등록 유권자의 50% 이상이 참여할 경우 주민투표가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당국 주장대로면 투표 사흘째 자포리자주 투표율 51%, 헤르손주 투표율은 48%다.
<타스>는 4개 지역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의 공격’ 때문에 도시에서 탈출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에도 투표소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투표는 기본적으로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에서 실시되지만 그밖에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크림반도와 모스크바 등 러시아 땅에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친러시아 세력이 자칭 ‘독립국’을 세운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서는 주민들에게 “공화국이 러시아에 편입할 것인지”를 묻고, 자포리자와 헤르손에서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독립, 독립국 창설, 그리고 러시아로의 편입”에 대한 찬반을 묻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하기 위한 절차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러시아는 유권자 153만명 중 83%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96.7%가 러시아로의 편입을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합병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17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는 독립 선언을 위한 결의안을 발표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8일 곧바로 크림 합병조약 체결 등으로 신속하게 후속조치를 취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밤께 우크라이나 4개 주에서 한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면, 러시아 정부는 28∼29일에 걸쳐 합병 법안을 상·하원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가결되면 30일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합병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투표 결과가 압도적 찬성으로 나오더라도 ‘국제적 인정’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러시아는 투표 결과를 이들 지역이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하는 구실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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