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돌풍에 휩쓸린 이탈리아.. EU '반푸틴 연대' 흔들리나

박용하 기자 2022. 9. 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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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조리자 멜로니가 25일(현지시간) 로마의 한 투표장에서 조기 총선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주축으로 한 우파연합이 대승한 데는 최근 유럽 극우세력의 부상을 이끈 요인들이 공통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경제난으로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고, 이주민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면서 극우 세력이 힘을 얻기 좋은 토양을 조성한 것이다. 이탈리아 극우 세력의 승리는 향후 국내 정책은 물론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극우 잇따른 승리 배경엔 경제난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우파 연합이 승리한 요인 중 하나로 최근의 경제 상황을 들었다. 이탈리아는 8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9.0% 상승해 7월의 8.4%에 이어 급등세를 이어갔다. 우파 연합은 경제난에 따른 유권자들의 좌절감을 선거전에서 최대한 활용하며 지지세를 키울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형제들은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때 유일하게 내각에 참가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은 정당이었다.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선거 과정에서도 정부지출 확대와 감세 공약 등으로 이반된 민심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창당 이후 10년간 줄곧 야당에 머물렀기에 새로움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도 받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중도좌파연합의 취약한 선거전도 우파 승리의 발판이 됐다.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의 퇴진에 따른 급작스러운 선거 정국에서 우파는 빠르게 결속을 강화했으나, 중도좌파연합은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한 것이다. 유권자들의 대안이 마땅치 않았기에 우파는 초반 지지율 우위를 선거 날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우파의 승리는 최근의 유럽 극우세력 부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지난 11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선 네오 나치에 뿌리를 둔 극우 성향 스웨덴민주당이 20%가 넘는 득표율로 원내 2당에 올랐다. 프랑스에서도 지난 6월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공화당(LR)을 제치고 우파 주류로 올라섰다.

이들 극우 세력의 부상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경제난으로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 공통적으로 작용했다. 또 코로나19로 잠잠했던 이주민과 난민들의 유입이 다시 이어지면서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강력 범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극우 세력이 힘을 키운 바탕이 됐다.

이탈리아 선거 결과로 향후 유럽의 극우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탈리아형제들은 스웨덴민주당과 스페인의 극우 정당인 ‘복스’, 폴란드의 집권 민족주의 정당인 ‘법과정의당’ 등과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 100년만에 이탈리아의 극우 총리가 될 조르자 멜로니 대표는 선거운동 당시 스페인의 복스 집회에도 방문했다. 복스는 이탈리아의 승리가 내년에 열리는 자국의 선거에 영향을 주길 기대하고 있다.

EU, 반러시아 연대 유지할 수 있나

우파연합의 승리는 이탈리아의 정책적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이민 정책의 변화는 클 것으로 보인다. 멜로니 대표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막는 강경 우파 프로그램을 옹호해왔다.

앞서 우파연합은 공공지출 확대와 대대적인 감세, 이탈리아 기업 보호 방안들도 공약했다. 일각에선 이탈리아가 만성적인 부채 문제를 타개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차기 정부가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하면 재정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유로존 3위의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에서 극우 세력이 집권하면서 EU에도 적잖은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있어 EU 회원국들의 연대가 지속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파연합을 구성한 정당들의 주요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가깝기 때문이다. 멜로니 대표는 자신의 저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유럽의 가치를 옹호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친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도 매우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 전진이탈리아(FI)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나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친러 성향을 보여왔다.

이탈리아의 차기 내각이 친러 본색을 드러내면 EU 회원국들과의 연대보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당면한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분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러시아의 동원령 선포 이후 EU가 논의하기 시작한 8차 대러 제재안을 이탈리아가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멜로니 대표가 다소 온건한 입장들을 보여온 점은 변수가 되고 있다. 그는 최근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나 살비니 대표와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맹비난하고 EU의 대러 제재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거에 거론했던 EU 탈퇴 주장도 현재는 내놓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차기 내각은 EU가 2026년까지 제공하는 1915억유로(약 264조원)에 이르는 코로나19 회복기금을 정상적으로 받으려면 EU에 협조할 필요도 있다. 이에 사회·경제·외교 정책에서 EU가 지향하는 방향과 완전히 다른 색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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