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무솔리니' 꼬리표 멜로니, 伊 총리 오른다

김광태 2022. 9. 26.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기총선서 우파연합 승리.. 反동성애 등 소수자 적대정책 주창
15세에 네오 파시스트 성향 청년조직 가입.. 강한 이탈리아 표방
이탈리아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조리자 멜로니가 25일(현지시간) 로마의 한 투표장에서 조기 총선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강한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인."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큰 조르자 멜로니(45·사진)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에게 붙는 꼬리표다.

25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멜로니 대표의 총리 등극이 유력해졌다. 멜로니는 워킹맘이지만, 반 동성애·반 이민자 등 소수자 적대 정책을 주창해온 인물이다. 이탈리아가 사상 첫 여성이자 파시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1922∼1943년 집권) 이후 79년 만에 첫 극우 성향의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멜로니는 1977년 로마 노동자계급 지역인 가르바텔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르바텔라는 전통적으로 좌파들의 보루로 여겨지는 곳이다. 멜로니는 좌파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성장한 셈이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 때문에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멜로니는 본인도 워킹맘이자 미혼모다. 그는 15살 때 네오파시스트 성향의 정치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의 청년 조직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MSI는 1946년 베니토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단체로, 1995년 해체됐지만 멜로니가 2012년 MSI를 이어받은 Fdl을 창당하고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았다. 멜로니에게 '여자 무솔리니'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멜로니는 최근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라고 단언했지만, MSI가 사용한 삼색 불꽃 로고를 Fdl 로고에서도 계속 사용하는 등 파시즘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2006년 29세에 하원 의원이 됐고, 2008년에는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청년부 장관이 되며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31세) 장관 기록을 세웠다.

멜로니는 '강한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인으로, 반이민·반유럽통합 등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다. 그가 집권할 경우 이탈리아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대러시아 제재를 반대하며, 동성애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유럽연합(EU)의 분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며 국제 사회는 긴장하고 있다.

멜로니는 아프리카 이주민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릴 정도로 반이민·동성애 등의 의제에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멜로니는 다른 극우 정치인들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는 친유럽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EU를 탈퇴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겠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에 남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고,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했다.

멜로니가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득표력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멜로니가 2019년 10월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한 연설이 리믹스 버전으로 편집돼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것이다. 멜로니는 당시 연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저는 여자이고, 엄마이고, 이탈리아인이고,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외쳤다.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와 중독적인 비트가 더해지면서 '조르자 멜로니 리믹스'는 유튜브 조회 수가 1200만 회 넘게 찍혔다. 애초 이 리믹스는 성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멜로니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멜로니는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당시, 유일한 야당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돈키호테 같은 선택으로 여겨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덕분에 그의 정치적 무게감은 무섭게 커 나갔다.

드라기 총리가 실각하고 조기 총선이 결정되면서 지난 정권에 불만인 유권자들은 멜로니를 마지막 남은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볼로냐대 정치학 교수인 피에로 이그나치는 "멜로니는 인플레이션, 에너지 비용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전 정권에 불만인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멜로니의 총리직 행에 대해 "친유럽적인 양의 탈을 쓴 멜로니가 일단 집권하면 민족주의의 송곳니를 드러낼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멜로니의 집권에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와 함께 우파 연합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적인 친푸틴, 친러시아 인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에선 멜로니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