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Law]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야 할까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2022. 9. 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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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020년 방영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를 플랫폼에 오랜 시간 잡아두기 위해 추천·좋아요 기능을 이용하고 있으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이용자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온라인상의 활동내역을 분석해 이용자의 성향에 맞춘 광고를 노출시켜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 SNS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이게 하고 나아가 이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항상 SNS와 연결(connect)되어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개인사는 물론 회사 업무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았는데, 퇴근 후에도 카카오톡을 통해 상사 등에게 업무지시를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보편화됐지만 제도 시행 이후에도 근무 시간 외 업무지시를 하는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경기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7.8%가 퇴근 후 업무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이 중 34.2%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퇴근 후 업무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8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위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란 불리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 시간에 전화, 전자 문서,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 수단을 이용해 업무 관련 지시를 반복적·지속적으로 하는 등 근로자 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사실 지난 2016년에도 비슷한 입법 시도가 있었다. 신경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당시 법안은 근로기준법 제6조 2항을 신설 ‘사용자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휴대전화를 포함한다),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 수단을 이용하여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리는 등 근로자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두 개 법안을 비교하면 최근 법안이 지속·반복되는 과도한 업무지시만 규제한다는 점, 법 준수를 위해 과태료를 도입한 점이 다르다. 종전 법안보다 규제를 완화하면서도 법의 강제력은 강화했다.

이런 법률이 도입되는 경우 근로자에 인정되는 권리가 소위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이다. 이는 근무시간 외 직장에서 오는 전자 우편이나 전화,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로 프랑스는 지난 2017년 1월 1일부터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노사 간 협의 내용을 도출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한 50인 이상 기업의 사업주에게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3750유로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과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우리는 글로벌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살고 있다. 게다가 메타버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삶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있다. 과연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타당할까.

먼저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근로자에 휴식과 여가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며 워라밸(work-life balance)도 달성될 수 있다. 다만 항상 연결되어 있음으로 업무시간이 늘어날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시간·장소에 관계없이 업무처리가 가능한 편의와 업무처리 시간이 단축되는 등 효율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 스마트 워크(Smart Work)이다, 이는 특정한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회사 외부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개념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스마트 워크는 선택이 아니라 재택근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현재도 상당 부분 업무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스마트 워크는 근로자에게 탄력 근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업무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복지 증진에 도움이 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스타트업, 외국과의 업무가 많은 기업,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전문 서비스직의 경우에는 업무시간을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다양한 근로 형태와 근무 시간을 고려하면 일률적인 업무시간 외 연결금지의 법제화는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전문가의 의견대로 근로시간을 재정의함으로써 퇴근 후 업무지시를 줄이고 나아가 업무지시가 있는 경우에는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설득력이 있다. 현재는 사용자 지휘와 감독하에 시간적⋅장소적으로 구속돼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만 근로시간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법률상 ‘호출 대기’라는 영역을 둬 원칙적으로 휴식 시간이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할 경우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자는 의견이다.

초연결사회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업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정의함으로써 근로자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안이 타당해 보인다. 법제화는 강제력이 있는 규범에 의해서만 사회문제 해결이 가능할 때, 그리고 법의 실효성이 담보될 때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몇몇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업무시간 외 카톡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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