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시민사회수석실 초토화된 까닭

정용인 기자 2022. 9. 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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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서관 3명 외 ‘어공’ 10여명도 쫓겨나
“장제원계 숙청 아닌 권력투쟁”

[주간경향] 지난 7월 하순 주말 아침, 기자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 정부 청와대 인사다. 그로부터 한 문건을 건네받았다. 대통령실 대외비 문건이 분명한데,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궁금해했다. SNS에 접속해보니 문건은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이슈리포트]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이 문건의 제목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었다. 바로 밑에 ‘22.06.30(木) 시민소통비서관실’이라는 발행일과 주체도 명시돼 있는 문건이었다.

문건은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시위의 성격을 ‘권력비판 시민단체’와 ‘권리요구 노동조합’으로 구분해 기술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무적 판단에 능하며 이슈 메이킹, 리딩 등 여론화 작업 전문”이라고 평가했고 노동조합은 “동원 버스 주차지역, 동원 규모, 행진노선 등을 고려하여 시위계획을 수립하며 최대 10만명 예상 효과적인 설계 및 군사훈련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문건에서는 두 시위가 ‘결합’하는 것을 ‘쟁점’이라며 ‘검토사항’으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연결 차단하는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며,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론장을 마련해 노조와 연결고리를 차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월 18일 오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77차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기 전 환송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대통령실 대외비 문건 유출 논란 전말

SNS 등에서는 노조집회에 대해 군사훈련 등의 용어를 쓰면서 “대통령실 측이 과거 군사정권 때나 가능한 낡은 노동조합관(觀)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류였지만 이 전 청와대 인사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그 내용이 어떻든 대통령실 입장에서 ‘큰 사고’가 벌어졌는데 외부 유출 경위에 대해 알려진 것이 있느냐는 탐문이었다. “솔직히 문건을 읽어보면 누가 관여돼 있는지 안다. 문건 사고 얼마 전 면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조한 것이 공론장이었다.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있는데 당연히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기자를 만난 한 시민사회 인사의 회고다. 이 인사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누굴까. 임헌조 전 시민사회비서관이다. 그는 252개 중도·보수성향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상임공동대표를 지낸 인사로 윤석열 정부 들어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문건을 제보받은 오후 임 전 비서관에게 혹시 유출된 문건 작성에 관여했는지 묻는 문자를 보냈으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앞서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가 예견한 대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지난 8월 31일 임 전 비서관이 관여하던 단체인 범사련이 강경한 논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실 조직도상 임 전 비서관의 상선인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겨냥한 성명이다. 성명은 “강승규 시민사회 수석은 정치인이지 시민사회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수석실을 확대 개편하는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시민사회를 존중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출발부터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범사련은 그 근거로 최근 대통령실 인사에서 “5명 비서관 중 3명이 면직 및 사임해 비서관 대부분이 떠나버린 껍데기만 남은 조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퇴진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강승규 수석이 구성원을 참소하고 사퇴를 종용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범사련의 주장은 사실일까.

대통령실 복수 인사로부터 확인한 문건 유출 사태의 ‘실상’은 다음과 같다. 문건 유출은 장제원의원실 인턴 출신으로 시민사회수석실에 들어와 일하던 장모 행정요원이 의견수렴 명목으로 지인과 운영하는 단톡방을 통해 해당 문건을 공유해 일어났다. 이게 단톡방에 들어와 있던 민주당 인사→방송국 기자로 추정되는 유출경로로 외부에 알려졌다. 임 비서관은 해당 문서의 기안과정에서 가필(加筆)하는 방식으로 관여했으며 단톡방 유출이 장 행정요원의 독자판단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탁 경위는 각자 다르지만 이들(임헌조와 장모씨)은 대학 선후배 관계라는 특수관계로 얽혀 있다.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위에서 ‘실상’이라고 밝힌 경위는 이번 대규모 인사 축출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각이다. 9월 5일 범사련은 왜 자신들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에게 사퇴를 요구했는지를 밝히는 2차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는 ‘22년 4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이라는 일시까지 밝히며 당시 내정자 신분인 강승규 전 의원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읍소한 경위를 밝히고 있다. 강 수석이 찾아간 인물은 이 단체의 이갑산 회장이다. 성명에서 이 회장은 “수석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함에도 단지 캠프 시절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맞지 않은 자리에 가고자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시민사회 수석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밝혔는데도 읍소를 거듭했다며 “강 수석은 임헌조 사무총장을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영입해 전적으로 맡기고 본인은 뒤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진다. “그후 3개월, 강 수석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 무고한 시민사회비서관을 참소하고 모함해 대통령실에서 쫓겨나게 했다. 문건 유출에 대한 포괄적 책임자는 본인이어야 함에도 오로지 자신만이 빠져나가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비겁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6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임명장을 받았다며 강승규 수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이날 강 수석이 공개한 임명장에는 임명일이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5월 10일자로 돼 있다. | 강승규 페이스북

강승규 수석, 보수단체로부터 퇴진 요구

9월 20일 이갑산 대표와 통화했다. “임헌조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듣기 시작한 것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임헌조 휴대전화의 포렌식에 들어갔을 때였다. 강승규 수석을 찾아가 ‘저를 보호해주십시오’라고 읍소했으나 돌아온 답은 ‘내가 보호할 입장이 못 된다, 사표를 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관이 경고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문건 유출 사건은 수석이나 비서관 둘 중 하나는 내보내야 할 일이 됐다. 수석을 택하고 비서관을 내보냈다.” 같이 책임질 사안인데 비서관 잘못으로 몰아붙여 뒤집어씌웠다는 주장이다. 중도·보수성향 단체의 연합체인 범사련은 진보성향 단체들도 끌어들여 ‘강승규 퇴진 시민행동’을 만들어 시민사회수석 퇴진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이 안 되는 일 두가지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 아닌가. 대통령실의 인사, 또 하나는 기구를 없앤다는 것이다. 이건 보수만의 일도 진보만의 일도 아니다. 시민사회와 앞으로 소통을 안 하겠다는 건데….” 기구를 없앤다는 것은 어떤 사건을 말하는 걸까.

지난 9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탑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윤석열 정부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대통령령 폐지’ 추진 규탄 및 반대 기자회견이다. 앞서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6일 관련 보도가 있었다. (경향신문 [단독] 윤석열 정부, 시민단체 밥줄 끊나…대통령령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밀실 폐지 추진) 총리실이 지난 9월 1일 각 부처와 지자체 관련 규정폐지안의 검토의견을 8일까지 내달라는 ‘의견조회’ 비공개 공문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공문에는 “기일까지 회신이 없는 경우 의견이 없는 것으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총리실은 의견수렴 기한을 지난 9월 16일까지로 확대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입법공고 기간이 애초 3일이었고, 관계기관 의견회람이 7일이었다. 법제처가 관련 공문을 비공개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일반적으로 입법예고 기간은 10일 이상 돼야 하고 사실은 40일 이상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이건 긴급조치도 아니고 3일만 입법예고를 하려고 했는데, 언론보도가 나오고 문제 제기가 되니 늘린 것이다.” 류홍번 전국민주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그렇게 추진하는 이유가 뭐냐면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비공개로 빨리 제기해서 해치워야 할 ‘오더’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공개로 급하게 처리하는 걸 보면 애초에 시민사회를 대화 파트너로도 인정하지 않았고,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나.”

시민사회위원회 대통령령 ‘폐지’도 일사천리

어찌 됐든 비공개문건이 의견수렴 기간으로 지정한 9월 16일도 지났다. 국무총리실 윤치업 시민사회비서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9월 22일 차관회의에 상정된 뒤 9월 27일 국무회의 (폐지) 의결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일사천리로 추진되는 셈인데, 폐지 반대 의견은 올라오지 않은 것일까. 당장 앞서 언급한 9월 14일 반대 기자회견도 있었다. “의견서는 많이 들어왔다. 검토의견을 달도록 했는데, 다음 주 행안부에서 주관해 (위원회 폐지안을) 일괄 상정한다. 전체 242개 위원회 중 하나로 시민사회위원회가 포함된 것이다.” 9월 20일 통화한 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 측 사무관의 말이다.

앞서 기자회견과 별도로 폐지 대상이 된 시민사회위원회 측과 총리실 측의 비공식적인 간담회가 열렸던 사실도 확인된다. 9월 19일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4기 위원 중 7명과 윤 비서관 등이 참여해 폐지에 대해 항의하고 답변하는 자리가 열렸다. 윤 비서관은 9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민사회 측과 협의하고 소통하지 않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겠냐. 시민사회위원회가 폐지된다면 TF를 구성하든 소통협의체를 만들든 시민사회단체와 충분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며 그날 간담회 참석자들의 양해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총리실 측이 밝힌 폐지의 근거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민관검증단의 위원회 조사다. 이 조사에서 중복 기능을 하는 위원회나 구성만 하고 회의를 안 하는 위원회, 단순 자문인 위원회 등 약 242개를 폐지하기로 했고, 그중 하나로 시민사회위원회가 포함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폐지한다는 논리였다. 국무총리실은 상충하는 각 부처의 이해를 조절하는 국무조정을 핵심역할로 한다. 정부조직법상 행정안전부의 상위기구인데, 국무총리실 산하의 장관급 위원회 폐지를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라 결정한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정부 시기부터 이번 정부 출범 초기인 7월 2일까지가 임기인 4기 위원이기도 했던 류홍번 위원장은 “행안부가 제시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시민사회위원회는 중복되지도 않고 실적도 아니고 단순 자문이 아닌 심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라며 “결국 정부 내 시민사회 담당파트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여성가족부를 없애기 위해 여성부 장관을 임명했듯이 시민사회 관련 부서를 폐지하기 위해 측근이자 정치권 출신인 시민사회수석을 임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추석 전까지 52명의 자리를 없앤 대통령실 인사 숙청작업의 ‘폭탄’은 시민사회수석실을 집중 타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주변의 말들을 종합하면 3명의 비서관(김성회 종교다문화비서관·임헌조 시민사회비서관·허성우 국민제안비서관) 외에도 10여명의 행정관이 물러났다고 한다. 지난 정부 시기까지 시민사회수석실의 경우 ‘어공(정치권 등 외부 출신 공무원을 칭하는 말)’과 ‘늘공(공무원 출신으로 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 등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의 비율이 반반이었다. 이번 정부 대통령실은 직업 공무원 출신이 부서별 1~2명에 그치고 대부분이 ‘어공’이었다. 그것도 정치권 출신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다. 나간 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사회공감비서관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비서관 자리는 아직 공석으로 전선영 선임행정관이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시민사회비서관실도 아직 후임은 내정되지 않은 가운데 김대남 선임행정관이 직무대리를 하고 있다. 시민사회수석실 산하였던 디지털소통비서관은 홍보수석실로 옮겼고, 홍보수석실 산하에 해외홍보비서관을 신설했다. 강인선 대변인이 이 자리로 옮겼다. 강 대변인의 자리는 현재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지난 9월 14일 용산전쟁기념관 정문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민사회 활성화 전국네트워크가 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대통령령’ 폐지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적 채용 논란 당사자들, 살아남아

문제는 이 조직개편·인적 쇄신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에 퇴출된 대통령실 인사들과 장제원 의원의 관련성을 예로 들며 “이른바 윤심(尹心)이 장 의원으로부터 떠났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인적 쇄신 과정에서 지난 5월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제기됐던 사적 채용 논란의 당사자들, 윤 대통령 외가 6촌 동생 최씨(현 김건희 여사 일정 담당 관저팀 팀장), 강원도 속초의 윤 대통령 지인 사업가 황모씨와 우모씨의 두 아들,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장 후보의 아들 등이 이번 인적 쇄신 과정에서 정리됐다는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 원장의 운전수행기사에서 검찰총장 퇴임 후 윤석열 수행으로, 다시 지난 지선에서는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 캠프에서 일하다가 시민사회수석실 5급 행정관(차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황모씨의 경우 9월 21일 현재 시민사회수석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이번에 그만두게 한 사람 중에는 대통령실에 들어온 뒤에도 일부 이권개입 사실이 확인돼 물러나게 한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왜 퇴출되는지 모르는 채 잘린 사람도 많다. 이중 ‘장제원 쪽 사람’으로 프레이밍돼 쫓겨났다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라며 “대통령실 조직을 슬림화하겠다는 것도 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 조직정리를 기화로 평소 죽이고 싶은 사람들을 쳐낸 사례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적청산작업이 혁신이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투쟁이었다는 주장이다.

대외비 문건 유출과 관련 임헌조 전 시민사회비서관에게 사표를 종용했다는 범사련 측의 주장과 퇴진 요구, 시민사회위원회 대통령령 폐기 등을 좀더 소상히 따져묻기 위해 강승규 수석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답하지 않았다. 강 수석은 9월 22일 현재 대통령의 방미일정을 수행 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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