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유력 극우 첫 총리 멜로니의 '거친 생각'에 EU '불안한 눈빛'
선거 중 일부 공약 후퇴했지만 '뼛속은' EU·세계화·코로나 방역·외국인 이주 4反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이탈리아에 무솔리니의 향수가 돌아온다. 지난 25일 치러진 총선 결과 '포스트 파시스트 운동'으로 정치를 시작한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의 총리 취임이 유력해지면서다.
이번 총선 결과 극우 3당 FdI·포르차·리가의 총합 득표율은 4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 상·하원 과반을 확보하기엔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멜로니의 FdI가 22~26%로 가장 높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포르차와 마테오 살비니 의원의 레가는 각 8%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의원내각제를 채택, 다수당(보통 연립정당) 대표가 정부 수반이 된다.
우파 베를루스코니(2008~2011) 정부가 있긴 했지만, 멜로니는 명실상부 '이탈리아의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가장 오른쪽에 선 정상이 될 전망이다. 10대 때부터 '포스트 파시스트 운동'에 뛰어들며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에너지 전쟁으로 남유럽 재정위기 및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최대 위기를 겪는 유럽연합(EU)의 미래도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엘파이스는 "유럽 정상들이 이번 이탈리아 총선 결과를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사회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멜로니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같은 반(反)민주적 인물과 동조, 그의 승리는 유럽 협력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사전 경고한 바 있다고 가디언지는 전했다.
◇우크라戰…당장 8차 대러제재부터 '불안'
엘파이스는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과 그 전망을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자 문제 △유럽 기금 차원에서 분류해 조명했다.
우선 멜로니 자신은 이번 선거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서방의 정책을 지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멜로니의 연정 파트너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정반대의 견해를 여과없이 드러내왔다.
미디어 재벌 출신으로 2008~2011년 집권했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집권 기간 정언유착 의혹은 물론, 이후에도 각종 부패와 성추문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오랜 친구 관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불법 합병한 지 2년 뒤인 2016년 푸틴 대통령과 함께 크림을 방문, 무언의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최근 TV 인터뷰에서도 "푸틴은 러시아 국민과 당, 각료들에게서 이번 특별작전을 펴도록 압력을 받은 것"이라며 "원래는 일주일 내 키이우를 접수해 젤렌스키 정부를 교체한 후 떠나려 했다"고 두둔했다.
베를루스코니 외에 또 다른 연정 파트너인 마테오 살비니 레가 대표는 한술 더 떠 푸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모스크바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거나, 대러 제재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멜로니가 표심을 잡기 위해 상대적으로 색채를 누그러뜨렸을 지 몰라도, 그 역시 친(親)푸틴계로 분류되는 인사다.
가디언지는 로마사피엔사대 마티아 딜레티 정치학 교수를 인용, 멜로니 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EU가 논의 중인 8차 대러 제재 지지 여부조차 불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이탈리아인 우선주의'…이민문제 강경
이민자 문제 관련해서 멜로니는 선거 유세 기간에도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린 적이 없다. 그는 '이탈리아인 우선주의'를 내세워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막는 강경 우파 프로그램을 옹호해왔다.
난민을 두 분류로 갈라치기, 경제적 목적의 이민자들은 국내 노동자 임금만 낮출 뿐이라며 비난하고, 이들은 우크라이나 출신 등 전쟁이나 폭력을 피해 도망치는 난민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북부 도시 피아첸차에서 한 외국인 망명 신청자가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을 성폭행한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기이한 행보도 서슴지 않았다.
엘파이스는 멜로니의 이 같은 반(反)이민 입장은 그의 연정 파트너들의 행보를 볼 때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봤다. 살비니 레가 대표는 내무장관 시절 이민자의 해상 구조와 그들의 정박을 막는 두 가지 법령에 서명한 바 있다.
현재 EU 내 불법 이민은 최고치에 도달 중이다. 8월 등록된 EU 내 이민 시도 입국자 수는 7월보다 61% 증가했다. 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길 원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강경한 국가도 많아 EU의 이민 개혁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데, 멜로니 정부에서 강경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직전 총리인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서명했던 국가회복계획(PNPR) 초안은 이탈리아 의회와 EU의 승인을 받았지만, 멜로니는 재협상을 주장, 유럽 기금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엘파이스는 부연했다.
당초 이탈리아는 EU의 코로나19 회복 기금 명목으로 2000억여 유로의 차관과 보조금을 받기로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게 멜로니의 주장이다. 멜로니는 개인적으로 코로나19 방역을 반대해왔다.
이에 이 기금은 전기·가스료 지원책으로 전용될 수 있으며, 친환경 개발을 위해 배정된 예산도 전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EU 전체 흔들까…초조한 유럽
멜로니는 원래 EU·세계화·이민자 수용·코로나 방역 4가지에 모두 반대해왔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EU와 유로존 탈퇴 주장은 접었지만, 정국 변화에 따라 얼마든 과거의 소신이 표출될 우려는 남는다.
멜로니는 폴란드의 국수주의 정당 '법과정의당', 스웨덴 백인우월주의 반이민계 '민주당', 스페인 극우 '복스'와 동맹을 맺고 있다. 스웨덴 역시 이달 총선에서 민주당이 포함된 우파연합이 승기를 잡았다.
뉴욕 컬럼비아대 나디아 우르비나티 정치학 교수는 "멜로니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모델이 되려는 야망이 있다"고 말했다. 극우 사상의 지배 이념을 EU 내 강화하기 위해 역내 다른 정당들과 접점을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투표 당일 오전 로마 다문화 지구 에스퀼리노의 한 투표소로 들어서는 유권자들의 분위기는 우울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 유권자인 카를로 루소는 "방향타 없는 배를 탄 것 같은 느낌"이라며 "선거운동을 하면서 든 생각은 정당 간 아이디어 교류가 아닌 모욕의 교류를 본 것 같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가장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말했다.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는 파우스토 마카리는 "베를루스코니 보면 만화 주인공 같다. 그 나이(86)에 정치하려고 하면 안 된다. 내 나이에 마라도나 같은 축구선수가 되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반면, 많은 멜로니 지지자들은 그의 결단력과 애국심에 끌렸다고 우르비나티 컬럼비아대 교수는 분석했다.
이 같은 우려 속 멜로니는 이날 "이탈리아 유권자들이 FdI에 차기 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했으며 많은 문제의 직면, 국가 단결을 촉구했다"며 사실상 승리 선언을 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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